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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침떼기 그녀의 마음 뺏기 프로젝트!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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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두 영웅에 박근혜와 문재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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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카 요시키의 대표작 『은하영웅전설』(이하 『은영전』)은 SF판타지 소설로 분류되지만 한 편의 뛰어난 정치소설이기도 하다. 아니 뛰어나다는 표현으로는 다소 부족할 정도로 곳곳에 정치에 관한 통찰이 가득 들어 있다. 이 점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은 박근혜 후보의 승리로 끝난 18대 대선 이후였다. 나는 개표 방송을 보면서, 이후 나온 갖가지 대선 결과에 대한 분석을 보면서 『은영전』을 떠올렸고 이 책을 다시 읽게 됐다.

『은영전』의 기본 구도는 간단하다. 최선의 군주제(은하제국)와 최악의 민주제(자유행성동맹)의 대립. 은하제국은 정치와 군사분야의 천재이자 강력한 개혁정책, 공평무사한 인사정책, 압도적 카리스마로 ‘백성’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황제 라인하르트가 통치하는 제국(帝國). 반면 자유행성동맹은 자유를 위해 은하제국을 탈출한 사람들이 기나긴 고난의 행군 끝에 만든 공화정이지만 현재 이 나라를 이끌고 있는 정치인들은 철저히 무능하고 부패한 상태다. 무기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으며 무모한 전쟁을 일으키고 비밀종교와 결탁하여 정치자금을 받고, 흡사 해방정국의 ‘서북청년단’ 같은 우국기사단을 만들어 반대파에 테러위협까지 가한다. 하지만 이 정권, 극중 인물인 욥 트류니히트가 수반인 자유행성동맹 정권은 국민들의 합법적인 투표에 의해 선출된 정부다.


애니메이션 <은하영웅전설>

최악의 민주정이 압도적 국력을 가진 군사천재 라인하르트에 대항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무패의 신화를 자랑하는 자유행성동맹군 최고 지장(智將) 양 웬리 때문이다. 양 웬리는 자국의 정권을 끊임없이 비판하면서도, 전쟁을 끊임없이 혐오하면서도 은하제국의 침공을 막아낸다. (양 웬리가 처한 상황, 캐릭터 등은 이순신과 매우 유사하다) 적장 라인하르트의 위대함을 흔쾌히 인정하면서도 그와 맞서 싸우는 건 오로지 ‘민주 공화정’이라는 가치를 보존해 후세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두 사람의 맞대결 이른바 ‘버밀리온 회전’은 결과적으로 무승부로 끝났다. 둘의 군사적 대결에서는 양 웬리가 승리를 목전에 두었지만 라인하르트의 부하들이 자유행성동맹 정부를 굴복시켜 항복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라인하르트가 타고 있던 전함을 정조준하고 있던 양 웬리는 정부의 항복에 따른 정전 명령에 지체 없이 따른다. 공화국의 군인은 민간 정부의 통제에 따라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두 사람의 단독회담은 『은영전』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다. 여기서 라인하르트는 양 웬리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하지만 부패하고 무능해 자신에게 무기력하게 항복한 ‘민주공화정’에 다음과 같은 신랄한 독설을 날린다.

“민주공화주의는 인민들의 자유의지로 자신들의 제도며 정신을 타락시키는 체제인가?”

양 웬리는 이 독설에 ‘인민을 해칠 권리는 오로지 인민 자신에게 있다’라는 말로 방어하면서 라인하르트 본인은 위대한 황제지만 후계자가 당신처럼 훌륭하고 뛰어나다라는 보장이 없다고 재반격을 가하지만 라인하르트가 민주공화정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를 지적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리고 이 독설은 여전히 유효하다.

18대 대선으로 돌아와 보자. 보수와 진보가 서로의 역량을 총결집 해 진검승부를 벌인 이번 대선의 결과는 51.6 대 48 이었다. 48쪽은 당연히 ‘멘붕’에 빠졌고 승리한 쪽은 ‘나라를 지켰다’며 환호했다. 흥미로운 건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쪽의 논거 중 하나가, 정확히 말하면 ‘차악’인 문 후보를 그래도 지지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 일부 사람들의 논거 중 하나가 ‘공화정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는 대놓고 박 후보가 ‘여성 대통령’이 아니라 ‘여왕’이 될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물론 박근혜 당선자는 죽을 때까지 권좌에서 내려오지 않는 여왕이 아니라 임기 5년의 단임 대통령이다. 헌법과 법률에 보장된 권한만을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 ‘여왕론’, ‘공화정 보존론’을 이야기하는 쪽은 당선자 혹은 집권 세력의 ‘성격’을 비판하기 위해 그런 것일 게다. 이런 점에서 48%에 속하는 사람들의 일부는 역설적으로 라인하르트의 독설을 깊이 체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국민들의 자유의지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제도며 정신을 타락시켰다”

반대로 문재인 후보가 당선이 되었다면 박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도 똑같이 생각할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실패에 책임이 있으며 대북관도 불분명하고 ‘남쪽정부’ 운운한 세력과 총선서 연대를 맺은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역시 ‘국민들의 자유의지로 민주공화국의 제도며 정신을 타락’ 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행성동맹의 끈질긴 저항을 물리치고 끝내 우주통일을 이룬 라인하르트는 불과 2년 만에 원인 모를 병으로 사망하고 만다. 자신의 후계로는 갓 태어난 자신의 아들이 아닌, 자신만큼 현명하고 능력이 충만한 황후 힐더를 택한다. 만약 자신의 아들보다 정치와 군사면에서 뛰어난 사람이 나타난다면 정권을 아들이 아닌 그 사람에게 주라는 유언도 남긴다. 천재 황제의 멋있고 쿨한 마지막 유언이지만 이후 모든 것은 불확실하다. 무엇보다 여기에는 ‘인민들의 의지’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스스로를 해칠 권리도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결과와 상관없이 이번 18대 대선은 라인하르트의 독설에 ‘그렇지 않다’라고 응답하지 못했다. 상대방의 승리를 이 독설에 끼워 맞추려고 했을 뿐이다. 양 웬리가 ‘백성을 사랑하는 철인(哲人) 황제의 치세’라는 유혹을 뿌리치고 끝내 지키고자 했던 ‘민주공화정’의 가치는 언제 어떻게 나타나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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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영웅전설 완전판 스페셜 박스세트다나카 요시키 저/미치하라 카츠미 그림/김완 역 | 디앤씨미디어(D&C미디어)
1982년 11월 일본의 도쿠마 쇼텐에서 출간된 『은하영웅전설』은 일본에서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작가 다나카 요시키는 이 작품으로 1984년 일본의 SF상인 ‘성운상’을 수상했다. 이후 1991년 우리나라에서 첫 출간된 후 쇄를 거듭하며 국민적인 인기를 누렸다. 『은하영웅전설 완전판』에는 국내에 번역된 바 없는 외전소설 『황금의 날개』가 완역되었으며, 작품의 만화화를 맡은 미치하라 카츠미의 컬러, 흑백 삽화가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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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모 “가수 그만둘까 생각했었다” -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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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뮤지컬 무대에서 못 만났을지도 모를 조성모.
  하지만 자연의 법칙대로 밀려온 밀물처럼 요셉 역이 그에게 맡겨졌고, 그는 자연스럽게 막 새로운 드림코트를 입었다.
  이미 요셉 역에 동화된 걸까?
  애잔한 발라드 노래는 따라올 자 없고, 국가대표마냥 운동 잘 하고, 소년 같은 미소만 지을 줄 알았던 이 남자,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뭐 이리 어메이징한 건지.


하지만 제목은 어렵다.

기자도 처음엔 보지 않고는 우물대지 못할 제목을 지닌 뮤지컬, <요셉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 조성모나 여타 배우들도 어렵긴 매 한 가지였다. 그래서 ‘요셉 어메이징’이나 ‘요셉의 드림코트’ 정도로 줄여 말한다고.

“하지만 제목 자체, 요셉의 채색 드림코트가 극의 중심에 있거든요. 드림코트 자체가 꿈, 희망,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에너지를 뜻해요. 요셉의 드림코트 때문에 벌어지는 일부터 아버지에게 나중에 그 옷을 받으면서 벌어지는 상황까지 처음과 끝을 맺는 상징적인 게 바로 요셉의 드림코트거든요.”

뭐 알면 쉽다. 모르면 어렵고. 요셉이라는 역도 그렇다. 성서 한 번쯤 본 독자들이라면 알만한 인물이지만.

“성서 속 인물로 신약에 예수님이 있다면 구약엔 요셉이 있다는 말을 하기도 하죠. 요셉은 위인이라기보다 누구나 겪는 삶을 대변하는 것 같아요. 역경을 겪고, 꿈을 이루고, 꿈을 짓밟히기도 하고,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거죠. 뮤지컬이나 영화 같은 문화 영상 컨텐츠의 마니아로서 본다면 요셉이라는 역할은 배울 게 참 많아요. 오락거리로서의 작품이 많다보니까 어떤 작품에서 배우고 싶거나 교훈을 주는 역할이 흔치 않거든요. 그런데 요셉이라는 인물은 ‘나도 이런 경우가 있었는데’, ‘나도 이래야지’ 하는 메시지를 주는 거 같아요.”


“손오공이 나오는 서유기처럼 즐기시면 돼요.”

‘오페라의 유령’, ‘캣츠’ 등을 제작한 뮤지컬의 거장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라이언 킹’, ‘미녀와 야수’, ‘아이다’ 등을 작사한 팀 라이스가 최초로 공동 작업한 작품으로, 한국에서 최초로 라이선스 공연되는 <요셉 어메이징…>. 위의 열거한 작품을 다 본 기자도 다소 생소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이만 회 이상 공연된 검증된 작품이다. 종교적일까 부담된다면 것도 접으시라. 물론 종교적인 색채는 극 전반에 깔려 있지만 종교적인 부담을 느낄 만한 구석은 없단다.

“손오공과 삼장법사, 저팔계가 나오는 서유기를 사람들이 재미있게 보잖아요. 손오공이 부처님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없는 이야기가 재미있게 들리는 것처럼 종교적인 색채가 무겁게 비치지는 않잖아요. <요셉 어메이징…>도 그래요.”


“시완아, 너는 스케줄이 없니?”

더블, 트리플도 아닌 콰드루플. 4명이 요셉 역을 맡는다. 아이돌까지 포진된 막강 배역진. 조성모는 무엇으로 승부를 걸까?

“사실 작년에 <광화문연가>를 할 때 더 극명했죠. 윤도현 씨와 함께 했는데 저랑은 색이 완전히 다르잖아요. 형님은 락커고, 저는 발라드 가수고 그래서 비교 아닌 비교도 당했죠. 느낌 자체가 달랐으니까요. 이번에는 송창의, 정동하, 임시완, 그리고 저, 각각 표현하는 게 다를 수 있지만 광화문 연가 때처럼 허구의 인물이나 창작극이 아니라서 요셉이라는 인물 자체의 성격 같은 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표현 면에서는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아요. 다만 누가 더 노래를 잘 하더라, 연기를 더 잘 하더라, 연습이 더 잘 된 것 같더라 정도는 판단하실 수 있겠죠.”

조성모는 그런 면에서 자신만만하다. 연습량이 아직까지 최고이기 때문. 하지만 임시완이 요즘 연습실에 생각보다 너무 자주 와서 불만이라고.

“임시완 씨가 그러더라고요. ‘요셉 역으로 밀어붙일 게 뭐냐’고 했더니 나이라고요. 그래서 저는 뭘로 밀어붙일까 하다가 연습실에 많이 나오는 걸로 승부하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요즘 시완 씨가 많이 나오더라고요. 그러면서 오히려 저를 견제하는 거예요. 그래서 물었죠. ‘너는 스케줄이 없니?’ (웃음) 시완 씨가 굉장히 신중해서 제대로 해내지 않으면 안 하는 성격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뮤지컬에도 욕심이 있는 거죠. 그러다 지난주엔가는 저만큼 많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제가 견제하죠. (웃음)”


조성모는 지금 걸음마 연습 중?

연습실 최다 출연(?) 중인 조성모는 연습도 특별하게 하고 있다. 지금 걸음마를 배운다기에 기자는 이내 고쳐 물었다. 시작이라는 의미의 걸음마가 아니고 진짜 걸음마?

“베테랑 선배들이 지적도 해주시고 많이 가르쳐주시거든요. 요즘 진짜 걸음걸이 연습을 하고 있어요. 가수들은 걷는 연습은 안 되어 있잖아요. 춤에 맞춰 연습하거나 할 뿐인데 뮤지컬은 극을 위한 걸음이 진짜 중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진짜 걷는단다. 대사를 하며 시선을 돌리고 가는 방향으로 가슴을 열어 걷는 디테일한 동작을 물 흐르듯이 표현해내기. 그냥 눈으로 보는 것보다 말로 하니 뭐 이리 어려운 건지. 하지만 순간 기자도 깨달은 바가 있었으니. 숱한 가수들의 뮤지컬 도전기를 보며 잘 하는데 어색한 그 무언가, 그 무언가가 과연 뭘까, 그 의문이 풀리고야 말았다.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모든 감정과 연기는 걸음걸이에서 시작되는데 저는 그걸 몰랐죠. 또 가수들만의 습관이 있어요. 노래가 시작되면 노래만 하거든요. 하지만 뮤지컬은 노래가 대사잖아요. 이번에 선배님들이 10년, 20년 무대에서 쌓아온 노하우를 전수해 주시고 잡아주셨죠. 선경이 누나, 남희 선배님, 정원이 누나도 알려주세요. 무대 예술은 걸음걸이 10년, 손 자연스럽게 하는 데 10년, 눈빛연기 10년, 대사하는 데 10년 걸린다는 말을 듣고 진짜 감동스러웠어요.”

감정 전달과 똑 소리 나는 발음으로 노래로는 따라올 자 없을 것 같은 조성모의 새로운 발걸음, 이번 <요셉 어메이징…>을 보는 재미 하나가 더 생겼다.


아이돌과 나 조성모

티켓파워를 지닌 준비된 연기자 아이돌이 뮤지컬 하는 것과 베테랑 가수가 뮤지컬 한다는 것엔 관객 역시 기대하는 바가 좀 다르다. 배우는 얼마나 무겁게 체감하고 있을까?

“아이돌들은 실은 연습만 열심히 하면 배우로서도 일할 수 있다고 봐요. 반면에 저 같은 경우가 부담이 많죠. 저는 가수로서의 이미지가 굳어져 있고 연기도 안 해봤잖아요. 그래서 저는 작년 <광화문연가>에서는 배우로서 노래를 잘 표현해야지 하는 마음이 컸어요. 하지만 올해는 진짜 ‘배우’가 안 되면 다시는 뮤지컬을 못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생겼어요. ‘조성모가 배우로 거듭났구나’ 라는 걸 못 보여드린다면 그만해야죠. 올해 이 작품으로 저한테 가능성이 보인다면 더 해 볼 것 같은데 아직까진 미지수인 것 같아요.”

지난해 <광화문연가>에서 그가 대사를 하면 관객이 픽 웃기도 했다. 것도 진지한 장면에서. 관객이 몰입이 안 되는 캐릭터라면 마땅히 떠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조성모에게 <요셉 어메이징…>은 앞으로 뮤지컬 배우를 하느냐, 마느냐를 결정짓는 리트머스 시험지인 셈이다.


조성모, 가수를 포기한 적도 있었다?

최근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선 재기하고 싶은 동료 가수들을 심사하며 눈물을 펑펑 쏟기도 했다. 심사를 하고 있었지만 자신도 겪을 수 있는 일들이라 더 눈물이 났다는 조성모, 그도 한 때 가수를 포기하려고 했다.

“작년 이맘때였어요. 광화문연가를 시작할 때쯤이었죠. 시작하기 전에 가수 그만 할까보다 생각했어요. 저는 인생의 흐름을 항상 느끼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잘 캐치해서 먼 길 돌아가지 않고 심플하게 살자, 본능에 가깝게, 사고 당하지 말고. 그래서 그즈음에 그만둬도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광화문연가>제의가 들어왔던 거죠. 저는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무대에서의 제 일을 지극히 사랑하고 혼신을 다하고 싶어요. 그렇다고 이 일에 집착하는 건 또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도 ‘나그네’라는 생각으로 일을 해요.”

15년간 노래한 베테랑 가수의 입에서 노래를 하는 것도 ‘나그네’와 같은 스쳐 지나가는 일이라는 말이 나올 줄이야.

“제 이름이 선뜻 생각이 안 나서, 아니면 저라는 존재가 잊히고 만다면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거기에 집착하거나 슬퍼서 인생을 망가뜨리거나 요즘엔 자살을 하기도 하잖아요.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요셉 어메이징…>에서 요셉이 노예가 안 되었다면, 억울한 일로 감옥에 안 갇혔다면 이집트의 왕이 될 수 없었거든요. 길이 하나가 아니란 말이죠. 뮤지컬을 하는 것도 집착하지 않으려고요. 그것도 그저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조성모가 뮤지컬을 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건 앙상블의 땀방울. 하루 12시간을 꼬박 춤추고 노래하며 욕도 먹지만, 밤새 연습하며 메인이 되기 위해 땀 흘리는 그들을 보며 혼자 노래만 잘 하면 그만이었던 자신을 돌아봤다. 가요계 최정상에 섰던 조성모는 혼자 뭘 해본 적도 없었다. 어디든 수행원 없인 다녀본 적도 없었고. 그래서 뮤지컬을 하면서 사회를 배우고, 부딪치면서 참는 법도 익히는 중이다. ‘나그네’ 조성모 인생의 기류는 아직 가수의 길에 머물고 있는 모양이다. 올해 ‘메모리 1998’이라는 이름으로 콘서트 전국 투어가 계획되어 있고, 올 가을에는 새 앨범도 나올 예정이다. 15년 전 가을에 데뷔했던 때처럼 부를 거라는 2013 조성모표 발라드, 또 얼마나 어메이징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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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 때문에 흥하고 비틀즈 때문에 망한 비운의 그룹 - 배드핑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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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라이어 캐리의 「Without you」를 알고 계신 분들은 많겠지만, 이 곡의 원래 주인공이 배드핑거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겁니다. ‘비운의 밴드’라는 타이틀은 그래서 배드핑거를 말할 때마다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죠. 그러나 단지 「Without you」 때문에만 이들이 박복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금주의 명반, 비틀즈에 항상 비교당해야만 했던 배드핑거의 대표작 < No Dice >입니다.


배드핑거(Badfinger) < No Dice > (1970)

배드핑거 역시 팝 역사에서 자주 회자되는 그룹이다. 그러나 화려한 업적이나 전설적인 스타로 기억되기보다는 불행하고 박복했던 밴드로 여겨지는 존재다. 「Come and get it」과 「No matter what」, 「Day after day」 등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했음에도 배드핑거가 비극의 대명사로, 그들의 히트작 < No Dice >가 비운의 작품으로 이야기되는 것에 대해서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앨범에 대해 설명하기에 앞서 이들의 일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틀스(The Beatles). 배드핑거를 얘기함에 있어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이들이다. 그룹의 흥망성쇠에는 이들이 항상 관련되어 있었으며, 단적으로 말해 비틀스 때문에 성공했고 비틀스 때문에 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첫 계약사는 비틀스가 설립했던 애플 레코드 사(社)였다. 디 아이비스(The Iveys)라는 이름에서 새로이 바꾼 배드핑거라는 밴드명은 비틀스의 곡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의 초기 제목인 「Bad finger boogie」에서 따온 것이었고 이들을 본격적으로 알린 곡 「Come and get it」은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가 직접 넘겨준 것이었다.

비틀스 멤버들의 솔로 곡에도 참여하고 데뷔 앨범 < Magic Christian Music >과 세 번째 정규 앨범 < Straight Up >의 프로듀싱을 맡기는 등 연이은 교류로 밴드는 비틀스의 후광과 상승효과를 얻을 수 있었으나 반대로 이는 그룹에 드리워진 그림자이기도 했다. 사람들과 미디어는 배드핑거와 그들의 후원자를 비교하기 시작했고 비틀스라는 이름은 뗄 수 없는 꼬리표처럼 이들을 따라다녔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매니저를 담당했던 스탠 폴리(Stan Polley)와의 수익 분배 문제와 금전적인 어려움으로 인한 멤버들 사이의 다툼은 밴드의 내분을 초래했으며 비틀스의 그늘을 벗어나고자 워너 브라더스 사(社)와 계약했던 1973년 이후에는 이렇다 할 결과물 없이 쇠락의 길을 걸었다. 결정적으로 1975년과 1983년에 그룹의 두 축이었던 피트 햄(Pete Ham)과 톰 에반스(Tom Evans)의 연이은 자살은 배드핑거의 원동력을 완전히 상실케 하는 사건이었다. 굴곡이 짙었던 영욕의 15년에 찍는 마침표였던 셈이다.

결국 밴드가 가장 화려하게 꽃 피웠던 시기는 애플 레코드 사에서 활동했던 1969년 말부터 1973년 초까지로 수렴한다. 그중에서도 두 번째 정규 음반인 < No Dice >는 성공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작품으로 비극의 뒤안길로만 보내기에는 아쉬운 작품이다. 특히 많은 이들이 해리 닐슨(Harry Nilsson)의 원곡으로,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리메이크한 머라이어 캐리의 버전으로 잘 알고 있는 「Without you」는 이 앨범의 여섯 번째 트랙에 수록된 피트 햄과 톰 에반스의 공동 작품으로 싱글로 발표되지 않아 제대로 된 빛을 못 본 비운의 팝클래식이다.


지금에서야 가장 많이 회자되는 곡은 역시 「Without you」이겠지만 이것만으로 음반을 해석한다는 것은 온당치 않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첫 곡 「I can't take it」이나 「Love me do」와 같은 흥겨운 로큰롤 넘버는 물론, 영국과 미국 싱글 차트에서 각각 5위와 8위를 기록했던 히트 싱글 「No matter what」과 같이 강렬한 록 사운드 속에 멜로디를 심은 감각적인 노래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서정적인 피아노 반주 위로 피트 햄의 보컬이 귀를 잡아끄는 발라드 「Midnight caller」 또한 밴드의 재능을 보여주는 결과물이었다.

한편으로 밴드의 두 중심축 피트 햄과 톰 에반스가 보여주는 상반된 이미지들 또한 앨범에 다채로움을 부여하는 요소이다. 어쿠스틱 기타에 단출한 관현악 편곡을 얹어 깔끔하면서도 웅장한 느낌을 주는 「We're for the dark」와 앞서 소개했던 「No matter what」과 같은 피트 햄의 곡에서는 멜로디를 강조한 팝 적인 진행이 드러나는 반면, 그루브 있는 베이스가 확연히 눈에 들어오는 「Better days」와 폭발적인 후렴구를 심은 「Believe me」와 같은 톰 에반스의 곡에서는 리듬 라인에 중점을 둔 날렵한 사운드가 돋보인다. 심지어 「Without you」에서의 보컬에서도 두 사람의 대조적인 성향이 드러나니 듣는 사람들에게는 흥미로운 요소가 아닐 수 없다.

탑 10에 안착한 싱글 차트와 28위에 오른 빌보드 앨범 차트가 증명하듯 밴드는 사람들에게서 높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더불어 스타 밴드로서 지분을 확보하는 등 성공가도가 열리는 것처럼 보였으나 애석하게도 비틀스의 그늘에 가려지기 시작한 시점도 이 시기부터였다. 사람들과 매스컴은 비틀스의 잣대 옆에 배드핑거를 두었고 음악 매거진 롤링 스톤(Rolling Stone)은 < No Dice >를 가리키며 ‘배드핑거로 환생한 비틀스’라는 표현까지 덧붙였으니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고역스런 칭찬이었을 테다.

이어지는 세 번째 앨범 < Straight Up >이후 배드핑거는 빠르게 쇠퇴기로 접어든다. 레퍼토리의 부족과 음악적 원천의 부재는 결정적인 원인이었고 여기에 촉매 효과를 던졌던 경제적 문제와 팀원 간의 불협화음 또한 무시 못할 문젯거리였다. 끝없는 고뇌의 시간 속에서 계속 한계의 벽을 두드려야만 했던 밴드의 전성기는 불행하게도 짧고 또 짧았다. 그 꽃이 그렇게나 빨리 시들 줄을 배드핑거 자신들은 알고 있었을까.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는 ‘no dice’라는 말은 그래서 더 절절하다.

글/ 이수호 (howard19@naver.com)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시골 사는 친구 어디 없나요? - 『주말엔 숲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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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하러 갈 때마다 하는 생각이 있다. ‘헤어 디자이너 친구가 있다면 참 좋겠다. 그럼 가끔 공짜로 머리도 감겨주고 말려주고 할테지. 매번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머리를 해줄거야.’ 맛있는 빵집에 갈 때마다 하는 생각도 있다. ‘친한 친구가 빵집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문 닫기 1시간 전에 가면 오늘 남은 빵을 먹으라고 싸 줄텐데. 신제품으로 개발하는 빵이라며 맛이 어떤지 미리 먹어보게 할텐데.’ 이 책을 읽고 난 뒤, 한 가지 생각이 더 늘어났다.

‘시골에 사는 친구가 있으면 좋을텐데. 주말이면 친구네 집에 가서 맑은 공기도 마시고, 유기농 채소에 고기도 싸먹고, 1박 2일처럼 복불복 게임도 하고 야외 취침도 하고 오면 주중에 쌓였던 피로가 싹 사라지겠지! 얏호!’


이 책에는 시골에 사는 친구가 등장한다. 번역가인 하야카와는 최근에 시골로 이사를 했다. (시골로 이사한 이유는 알고 보면 황당하다) 시골에 살면서 택배로 감자와 채소를 시켜 먹고, 호수에서 카약을 탈 때는 유명 브랜드의 구명조끼를 입는다. 번역일 외에도 동네 회관에서 기모노 입는 법을 가르치고, 옆집 아이의 영어 숙제도 봐주면서 바쁘게 살고 있다. 매실장아찌 담그기와 텃밭 기르기는 귀찮아서 하지 않는다.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는 마유미와 여행사에 근무하는 세스코가 하야카와의 친구들이다. 친구들은 하야카와가 시골로 이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다.

친구들은 시골집에 올 때 마다 도쿄에서 유명하다는 햄버거며 샌드위치, 양과자, 초콜릿 등을 사온다. 선물을 대환영하며 친구들이 맛있는 걸 사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반복되는 하야카와의 대사가 압권이다. (이 만화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면 중 하나다!)

별 생각 없이 시골집을 방문했던 친구들은 하야카와와 숲을 산책하고 호수에서 카약을 타면서 신선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하야카와의 설명을 들으며 눈 속에서 피어난 물파초를 보면서 누가 보지 않아도 핀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너도밤나무가 강하지 않고 부드럽기 때문에 눈이 쌓여도 휘어질 뿐 부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날다람쥐라고 항상 날기만 하는 것은 아니며, 날기 위해서는 다시 나무를 올라야 한다는 사실에 또다시 출근하러 가야 하는 상황을 조금은 편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마유미와 세스코. 직장에서는 어김없이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생긴다. 예전처럼 짜증을 내다가 문득, 하야카와와 숲을 산책하며 봤던 풍경들이 머리를 스친다.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나무 싹의 모습, 산호랑 나비가 되기를 기다리던 유충의 모습, 고개를 떨어뜨리고 피었다가 점차 고개를 드는 엉겅퀴의 모습들을 떠올린다. 그들은 한 번 크게 호흡을 하고, 숲 속에서 봤던 자연의 모습대로 살아가기로 마음을 정한다. 그리고 회사를 가지 않는 주말에는 어김없이 숲을 찾는다.

너무나 쉽게 충고하고 조언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무섭다. 정해진 답이 없는 삶이라는 문제를 100점 맞았다는 듯이 자랑스레 말하는 그들의 얼굴을 마주보기 힘들 때가 많다. 이렇게 말하는 나조차 누군가에게 쉽게 충고하고 조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대로 사는 게 정말 잘하는 건지, 뭐가 정말 맞는 건지 모를 때는 숲 속에 가보는 게 어떨까. 가장 오랫동안 나를 지켜봐 온 엄마도, 영양가 없는 수다를 몇 시간씩 들어주는 친구도 말해줄 수 없는, 신비로운 답을 숲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혼자서 숲에 가는 건 조금 외로울지 모른다. 하야카와와 마유미, 세스코처럼 같이 뒷담화 대회도 하고, 스노슈즈를 신고 눈 쌓인 숲 속을 함께 걸어줄 친구들이 꼭 필요하다. 한 쪽에서는 낙엽 귀를 단 눈토끼를 만들고, 다른 한 쪽에서는 눈을 긁어 모아 눈 테이블을 만든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는 꼭 컵라면을 먹어야 한다! (쓰레기통이 없으니까 국물은 싹 다 마셔야 한다) 그러면 눈밭을 ‘ㄹ’자 모양으로 기어다니면서 깔깔깔 웃게 될 것이다.

시골에 사는 친구, 어디 없나요? 있으면 소개 좀 시켜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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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 숲으로마스다 미리 글,그림/박정임 역 | 이봄
일본 30대 싱글 여성들의 정신적 지주인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마스다 미리. 그녀가 2006년 발표한 ‘수짱’은 30대 초반의 독립한 싱글여성들과 깊은 공감을 나누며 수 많은 여성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결혼에 대해 고민하고, 노후를 걱정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몰두하면서 재충전을 위해 주말여행을 계획하는 만화 속 주인공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2~30대 여성들의 벗이자 동료이며 그들 자신이다. 그들을 통해 여성의 목소리를 담담하고 솔직하게, 과장하지 않고 진솔하게 들려주는 이 만화는 은근하지만 뜨거운 공감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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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으로 믿음을 주는 세상의 모든 남자: 의 류승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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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확실한 콘셉트 영화가 있을까? 세상이 공정하지 않다는 기본적인 분노를 깔고 있지만, <7번방의 선물>은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다는 전제를 깔고 이어가는 동화 같은 거짓말이다. 유아 살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7번방의 선물>은 건강하고 착하다. 피의자의 인권, 경찰수뇌부에 대한 불신, 재판의 불공평성, 정부 마크가 찍힌 이불을 덮고 폭행을 가하는 장면에서는 제도에 대한 비판도 담아내지만, 사회비판의 논제를 적극적으로 드러내진 않는다. 이 영화의 목표는 분명하다. 명민하게도 어느 지점에서 울리고 웃겨야 하는지, 그 정확한 지점을 알고 있다. 영화는 법정 드라마를 내세운 미스터리, 감방을 배경으로 한 변주된 조폭 코미디의 장르적 특성도 흡수하고, <하모니>에서 보아온 재소자들의 감동 드라마, <아이 앰 샘>에서 보여준 바보 아빠의 절절한 부성애까지 아주 많은 영화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보여주지만, 그 여러 가지 변주를 온전히 자기화한다.



<베를린>의 물량공세에도 흔들림 없이 지난 주말 전국관객 400만을 돌파한 그 원동력은 온전치 못한 세상에 대한 분노로 결집하게 한 <레미제라블>과 정반대의 지점에서 폭발한다. 그래도 세상은 꿈꿔보고 믿어볼 만하다는 <7번방의 선물>은 분명 ‘기적’을 담고 있다. 영화의 흥행도, 내용도, 그리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현실성이 떨어지는 과장된 최루 코미디에 담긴 진심과 열정도 되짚어 보면 모두 ‘기적’과 같다. 이 모든 거짓말을 믿음직하게 만드는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배우들의 진심어린 연기가 있다. 아역배우 갈소원과 어느 영화에서도 제 몫을 하는 오달수, 김정태, 박원상은 영화의 과장된 감정의 흐름 속에서도 정확한 지점에서 제 목소리를 내며 서로를 방해하는 법 없이 조화롭다. 그리고 그 구심점에 류승룡이 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보여준 과장된 마초 캐릭터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류승룡의 바보연기는 짜릿한 배반이다. 그리고 그 배반의 충격은 철저히 바보가 된 류승룡의 연기를 통해 믿음으로 변한다. 이 남자, 참 물건이다.


류승룡, 세상의 모든 남자



<황진이>


<천년학>

한국공연예술의 새로운 혁명이었던 난타 1기 배우로 시작해, 2004년 장진 감독의 <아는 여자>에서 은행털이 단역으로 데뷔하여 꽤 많은 영화에서 얼굴을 알렸지만, 배우 류승룡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최초의 작품은 2010년 드라마 <개인의 취향>이었다. 하지만, 류승룡이라는 배우의 강렬함은 그 보다 훨씬 앞서 영화 쪽에서 차곡차곡 내실을 다지고 있었다. 37세의 나이에 신인남우상 후보에 오른 영화이기도 한 <황진이>에서 그가 맡은 송도 유수 김희열은 영화 속에서 가장 입체적이고 돋보이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류승룡을 다양한 얼굴로 각인시켜주는 가장 큰 특징인 이율배반적 이미지는 <황진이>에서 시작되었고, 빛나고 있었다. 황진이를 둘러싼 수많은 남자 중에서 김희열은 가장 호방하지만, 동시에 황진이의 돌변에 가장 비열한 모습으로 응대한다. 호방함과 비열함의 두 얼굴이 동시에 가능한 류승룡의 독특한 매력은 캐릭터 속에서 더욱 빛났다. 또한 가장 비열한 순간에도 천박해지지는 않는 그의 이미지는 캐릭터를 더욱 상승시키는 역할을 해냈다. 2007년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에서도 그는 순박하고 우직하지만 괴팍한 시골 남자 역할을 맡았다. 거장 임권택을 만나 류승룡은 주인공은 아니지만, 순박하고 괴팍할 정도로 심지가 굳어 심지어 신비로운 느낌까지 주는 캐릭터로 진화했다.


<개인의 취향>


<최종병기 활>

이런 이율배반적인 이미지가 상승해, 그를 대중들에게 깊이 각인시킨 작품은 2010년 드라마 <개인의 취향>이었다. 이 작품에서 류승룡은 비밀스러운 게이 역할을 맡아, 우아하면서도 중후하고 남성적이면서도 섬세한 캐릭터를 선보인다. <7급 공무원>, <바람의 화원>, <불신지옥>등 개성강한 작품에 등장했음에도 크게 부각되지 못했던 그의 인지도는 급상승했고, 캐릭터가 아닌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대부분 개성 강한 캐릭터를 맡으면 그 틀에 갇혀 벗어나기 어렵게 되는데, 류승룡에게는 예외적인 일이었다. 그는 곧 엄정화와 함께 한 <베스트셀러>에서 역시 냉정하지만 따뜻한 감성을 지닌 남편 역할로 돌아왔다. 이후 그는 날개를 달았다. 데뷔 이후 9편이나 함께 한 장진 감독과 함께 한 2010년 <퀴즈왕>의 출연을 시작으로, 그가 출연한 영화들은 <최종병기 활>, <평양성>, <고지전>, <내 아내의 모든 것>, <광해, 왕이 된 남자>등이다. 개구리 소년의 미스터리를 다룬 영화 <아이들>에서 다소 주춤하긴 했지만, 거의 불패신화라 할 만한 흥행 성적을 거두면서 승승장구 하고 있다.


<내 아내의 모든 것>


<광해, 왕이 된 남자>

많은 작품들이 흥행에 성공했지만, 오늘의 류승룡을 CF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대중적인 얼굴로 다시 한 번 각인시킨 작품은 2011년 <내 아내의 모든 것>이다. 독특한 매력으로 여자들을 유혹하는 카사노바 ‘성기’가 된 류승룡은 강인한 남성적 매력에 허당의 이미지와 섬세한 감수성까지 더해, 류승룡만이 뿜어낼 수 있는 배반적 이미지를 과시하면서 이 영화의 최대 수혜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코믹한 이미지가 강해 주춤하게 될 법도 한데, 류승룡의 다음 작품은 <광해, 왕이 된 남자>였다. 이 영화에서 그는 완벽한 지략가로 변신한다. 그는 이 영화에서 가장 상식적인 ‘킹메이커’가 되어 이병헌과 함께 든든하게 영화의 중심을 이끌어 간다. <최종병기 활>에서 호기로운 무인의 이미지를 보였던 그가 이번에는 냉정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지략가라니, 과연 한 사람의 배우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냉정한 웃음기를 걷어낸 그의 얼굴은 카리스마 넘치고, 믿음직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허균이라는 그의 캐릭터가 이끌어내는 웃음 코드는 생각보다 훨씬 다채롭다. 극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과장되지 않은 그의 웃음코드는 전략적이고 치밀해 보인다.


<광해, 왕이 된 남자>이후 애니메이션의 목소리 연기를 거쳐, 2013년을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7번방의 선물>에서 류승룡은 다시 부성애 가득한 바보가 되어 관객과 만난다. 이제까지 그를 수식하는 단어가 섬세함, 부드러움, 냉정함, 강인함, 섹시함이라는 전혀 조화롭지 않은 단어라는 사실이 류승룡이라는 배우의 가치를 대변해 주고 있다. 이 모든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되짚어 보면, 류승룡이라는 배우는 어쩌면 세상의 모든 남자를 연기할 수 있는 배우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에 능청스러움까지 더한 <7번방의 선물>이 배우 류승룡이 가진 ‘변신’에 대한 강박처럼 보이지 않은 이유는 이미 우리가 배우 류승룡에게 기대하는 바가 ‘변신’이 아니라 배우로서 그의 연기에 대한 ‘환기’라는 점에 있다. <7번방의 선물>에서 류승룡은 캐릭터를 희화화시키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를 통해 웃게 되는 이유는 바보연기를 통해서가 아니라, 딱 그 캐릭터에 적합한 반응 때문이다. 이 영화를 통해 그는 바보 캐릭터가 아니라, 딸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할 수 있는 절절한 부성애를 표현할 수 있는 배우로 각인되었다. 배우들의 연기가 어떤 지점에서 관객과 소통하면서 쾌감을 준다고 할 때, 그는 늘 ‘절정’을 맛보게 해주는 배우이다. 그러니 다음 작품에서도 충분히 유혹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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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방의 선물
이환경
류승룡 | 박신혜 | 갈소원 | 오달수 | 박원상 |
       김정태 | 정만식 | 김기천 | 정진영
코미디,드라마
15세이상관람가
2013.01.23

영화정보리뷰50자평관련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어두운 뉴욕 뒷골목에서 피어나는 기적과 같은 동화!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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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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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미제라블>이 너무 크게 흥행한 탓일까. <비러브드>는 프랑스에서 건너온 뮤지컬이다. 사실 <레미제라블>보다 <비러브드>가 먼저 만들어졌으니, 조금은 다른 의미로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레미제라블>이 대사를 모두 노래로 채웠다면 <비러브드>는 중간중간 감정을 표현하는 용도 정도로 쓰였다. 비슷하지만 다르다. 그래도 한가지 확실한 것은 <레미제라블>이 아니었다면 <비러브드>가 한국 관객과 만나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거라는 사실이다. 그만큼 뮤지컬은 이제 굉장히 대중적인 장르로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인다.

    <비러브드>의 주인공은 까뜨린느 드뇌브다. 그렇다 <쉘브루의 우산>에서 립싱크로 욕을 먹었던 그 배우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직접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투박한듯 하면서도 진심이 어린 목소리다. 그녀는 첫눈에 반한 사랑과 세월의 흐름 속에서 헤어지고 만나고를 반복한다. 하지만 역시나 진정한 사랑을 이루기는 어렵다. 그리고 과연 그러한 감정을 사랑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확신도 서지 않는다. 구두 한켤레로 시작된 '창녀'라는 그녀의 아르바이트는 체코인 의사를 만나 결혼에 골인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요소가 된다. 체코에서 적응하지 못한 그녀가 프랑스로 돌아와 새로운 남편을 만나고, 전남편과 사이에서 낳은 딸을 키우며 일상에 적응해갈 즈음, 전남편이 다시 찾아온다. 그리고 그들은 꺼져가던 불씨를 더욱 뜨겁게 태운다.


    실제 까뜨린느 드뇌브의 딸인 키아라 마스트로야니는 영화 속에서 모녀로 등장해 창녀 엄마와 공산당이자 의사였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부모님의 영향이었을까. 그녀는 굉장히 개방적인 사랑을 한다. 동료와 거침없이 섹스를 하고, 게이 남자에게 첫눈에 반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늘 공허하다. 목숨을 내 놓을 정도로 열정적인 사랑을 퍼부었던 남자에게 결국 그녀는 사랑을 얻지 못한다. 그녀는 아이를 가지고 싶어한다. 자신을 닮을 딸을 갖고 싶어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갖기 위해 프랑스에서 몬트리올까지 날아온다. 9ㆍ11테러가 터진 그 순간, 그녀의 인생 역시 끔찍한 테러를 당하고 만다. 스스로 테러를 감행했다고 해야할까.

    그녀를 먼발치에서 혹은 가까운 곳에서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 연하의 그는 소설을 쓰면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한다. 몇 차례의 섹스와 데이트가 오갔지만 그녀의 마음을 붙잡지 못한다. 그녀의 질투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스스로 몸에 낙서를 하는가 하면, 있지도 않은 여자 얘기를 꺼내기도 한다. 하지만 여자는 냉담하다. 그럴 때마다 남자는 그녀의 무심함에 몸서리친다. 그러면서도 그녀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도대체 무엇이 모자랐던 걸까. <몽상가들>, <러브송> 등에 등장했던 루이스 가렐이 남자 역을 맡았다. 짙은 인상의 매력적인 이 남자는 계속 부정당하고 무시당하지만 그녀의 곁을 끊임없이 멤돈다. 그래서 더 쓸쓸하다.


    까뜨린느 드뇌브의 현재 남편이자 키이라 마스트로야니의 새아빠는 아내의 부정행위를 알고있다. 전남편과 계속적인 밀회를 즐기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는 아내의 그 같은 행위를 눈감아 준다. 아무리 전남편과 만난다 해도 지금 그녀를 소유한 것은 본인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녀가 스스로 떠나지 않는 한, 그녀를 버리지 않겠다고 한다. 그리고 모든 사건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계속 바라본다. 그녀가 자신만을 바라봐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당당하게 그녀의 전남편에게 그녀를 찾아오지 말라고 말한다. 흥분하지도 않는다.


    영화는 묻는다. 과연 ‘사랑하는 것’과 ‘사랑 받는 것’ 중에서 무엇을 고르겠느냐는 물음이다. 답은 각자의 몫이다. 사랑을 받지 못한 이는 눈물을 흘리지만, 사랑할 수 있었기 때문에 행복했을 수도 있다. 엇갈린 운명은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지만, 그만큼 추억과 기억이라는 선물을 선사했다. 그리고 그것이야 말로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요소임에 분명하다. 그 같은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축복일 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할 수 있다는 열정 말이다.


    파리에서 시작해 프라하, 런던, 몬트리올을 오가는 볼거리는 이 영화의 매력이다. 게다가 영화를 관통하는 매혹적인 노래들은 영화의 분위기를 새롭게 만들어 준다. 배우들의 본인의 목소리로 표현해내는 노래들의 힘은 이 영화의 가장 큰 선물이다. 까뜨린느 드뇌브, 키아라 마스트로야니 모녀를 비롯해 <스위밍 풀>, <피터팬>의 뤼디빈 새그니어, <워터 폴 엘리펀트>의 폴 슈나이더, <맨 온더 문>, <래리 플린트>를 연출하며 감독으로 더 잘 알려진 밀로스 포먼, <다이하드 : 굿 데이 투 다이>의 라디보제 부크빅 등 이름은 생소하지만 얼굴은 익숙한 배우들이 총출동한다는 점도 이 영화의 강점 중에 하나다. 그러고 보니, 이 작품, 지난 칸 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되었던 작품이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신성 크리스토프 오노레의 젊은 연출은 다소 어두울 수 있는 영화의 이미지를 훨씬 컬러풀하게 변화시켰다.

    성인들을 위한 뮤지컬 영화 <비러브드>는 제목에서 말하듯 연인들을 위한 영화다. 성인들을 위한 영화라고 하는 이유는 이야기의 파격도 있지만, 너무나 자연스러운 베드신을 비롯해 쓰리섬까지 이어지는 화끈한 영상들도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 <우리도 사랑일까>를 좋아했던 관객들이라면, 한번쯤 경험을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너무 새로워서 낯설을 수도 있긴 하겠지만, 늘 똑같은 경험을 주장하는 그렇고 그런 영화들과는 궤적을 달리하는 작품이다.

    영화를 본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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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 노무현이면 콩쥐, 친 이명박이면 팥쥐?! - 『조선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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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C방에서 들킨 대한민국

    대선 기간 막바지, PC방에서 있었던 일이다. “문재인은 빨갱이야”, “맞아 맞아, 근데 박근혜는 친일파래”, “히히, 그럼 누구 찍어?” 희희낙락하며 주고받는 이 대경할 대화에 아연실색하여 돌아보니 허탈하게도 초등학생 몇몇 애들이었다. ‘누가 나쁜 놈이고, 누가 좋은 놈이야?’

    그 아이들은 한 후보를 빨갱이라 하고, 한 후보를 친일파라 말하고 있었다. 주변, 특히 인터넷에서 연일 쏟아지는 책임 불명의 말들이 아이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발음되고 언어로 기능하고 있었다. 그러나 몇 분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조용히 모니터 화면에 몰두했다. 세상의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결정하는 일이 당장의 온라인 게임보다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흐름이다. 무리에서 소외되지 않게, 회자되는 소재에 대해 의견을 피력해야 한다. 아이들은 각자 사유에 의한 판단이 아닌 직관적인 선택을 했고, 그 둘의 차이는 다행히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단지 어느 무리에 소속되기를 바랐을 뿐이니까. 선택은 나열된 사안 중에 단지 한 가지를 고르는 행위이고, 판단은 특정한 상황에서 사리 분별을 통해 결정하는 행위라고 하자.

    PC방 아이들은 손쉽게 ‘선택’했지만 그것은 ‘판단’이 아니다. 그리고 선택도 단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하는 양자택일 구조의 선택이었다. 한쪽이 좋은 사람이면 한쪽은 나쁜 사람이다. 다른 경우는 없다. 내 편은 좋은 사람이고, 내 편이 아닌 사람은 적이고, 적은 나쁜 사람이다. 비단 아이들만이 가지고 있는 논리 구조의 문제일까? 선택에는 마땅히 그 선택을 이유로 한 목적이 수반된다. 그런데 그 목적이 단지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면?

    요즘 한국에선 특정 당의 정책을 비판하면, 당 그 자체를 비판하는 정치 세력으로 치부된다. 만약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곧 반정부주의자로 둔갑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복지 정책에 비판적인 사람과 정부 정책에 긍정적인 사람이 있다. 전자는 기존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후자는 기존 정책이 유지되길 바란다. 점진적 보완과 수정으로 정책의 방향을 제시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을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으로 여긴다. 정부의 정책은 다양하고, 그 분야에는 가짓수도 대단히 많다. 그런데 정부의 정책 중 일부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말미암아 그를 반정부주의자로 매도하고, 심지어 비난한다. ‘정책’에 관한 판단을 하지 않은 채, ‘정책’ 선택이 다르다는 이유로 비꼬고 야유한다.

    ‘정책의 다름’이 무엇인지, 왜 그런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자신이 신뢰하는 대상의 한 부분이라도 누군가가 문제 삼으면 곧바로 선택에 들어간다.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면 반정부주의자고, 나쁜 사람이다. 이런 바탕에선 정책을 논할 수 없다. 이런 판은 광장이라 할 수 없다. 인터넷 공간을 부유하는 한낱 정체불명의 구호들을 입으로 배설하고 있던 PC방 초등학생들의 수준과 무엇이 다른가?

    자기 사유화를 거치지 않은 채 ‘선택’에만 국한한 논의는 소통을 불가능하게 하고, 타당한 정치적 행위 자체를 불신하게 하는 상태까지 이르게 한다. 결국 선택의 목적이 적에 대한 확신이나 자기 방어가 되어, 스스로 만든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대화는 불가능해진다. 우리 사회는 이미 상당 부분 이런 이분법적 사고 프레임에 잠식되어 있다.

    나는 우선 이런 사태의 원인 중에 하나를 일제 식민사관이 만든 조선 역사 왜곡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오항녕의 『조선의 힘』(역사비평사 펴냄)에선 이 프레임에 대한 한 편의 근거를 제시한다.


    콩쥐/팥쥐 프레임

    오항녕의 『조선의 힘』은 조선이 왕조를 500년간 지속할 수 있었던 저력에 관해 말하고 있다. 최고 권력자인 왕에 대한 교육과 견제 작용의 경연(經筵), 역사의 흔적 실록(實錄), 200년간 진행된 대동법(大同法), 오래된 미래 조선 성리학(性理學) 그리고 조선에 대한 여러 오해들을 풀어가면서 조선 시대의 가치를 조명하고 있다.

    “사람들은 조선이 근대로서 전환 실패에 따른 실패한 체제였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근대로의 전환은 시험에 합격, 불합격을 따지듯 말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일부만 제외하고는, 지구상에 조선을 비롯해 대부분의 문명들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근대를 자신들의 미래로 생각하지 않았다.” (5쪽)

    근대를 척도로 한 역사의식과 서구 역사를 잣대로 한 시대 의식이 조선을 편견으로 바라보게 하진 않았을까? 그리고 우리의 유전인자에 원래 사대주의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식민사관의 세뇌가 우리의 역사적 자부심을 억압하고 있진 않는가?

    저자는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폭력적인 프레임을 말한다. 근대를 절대화하여 ‘근대=선’/‘조선=전통=악’이란 도식이다. 나아가 ‘사대=나쁜 나라’ 대 ‘주체=좋은 나라’라는 전형적인 ‘콩쥐/팥쥐’ 구도를 형성한다고 한다.

    ‘콩쥐/팥쥐’ 구도는 판단이 아닌 선택이고, 선택이 아닌 강요이다. 이미 좋은 편, 나쁜 편이 결정되어, 좋은 편은 무엇을 해도 좋은 일이고, 나쁜 편은 무엇을 해도 나쁜 일이 되는 구조, 그리고 내 편이 아니면 다 나쁜 편이고 내 편을 싫어하면 다 나쁜 편이 되는 구조에서 우리의 선택은 ‘과연 선택이라 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돌출시킨다.


    조선의 팥쥐 대동법, 성리학, 사대

    조선에는 어떤 콩쥐와 팥쥐가 있을까? 먼서 대동법 콩쥐/팥쥐를 살펴보자. 대동법은 공납의 폐해를 개선하고자 백성을 위해 펼쳤던 정책이다. 약 200년이 걸린 이 정책은 조선 사회의 획기적인 변화였다. 하지만, 대동법을 정책이 아닌 지주/소작이라는 계급론으로 환원하여, ‘콩쥐/팥쥐’의 구도로 만들어 버렸다. 양반은 지주이자 팥쥐, 백성은 소작이자 콩쥐로 만들었다. 그리고 양반 세력에 맞서 대동법을 실행하고자 했던 왕도 콩쥐가 되었다.

    사람들은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나 똑같은 놈들이지, 그놈이 그놈이야” 하면서 정치인들을 같은 부류라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을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자들로 보면서 서민과는 다른 집단으로 만들어 버린다. 대동법은 누가 추진했을까? 백성을 사랑한 왕이 자신들의 배만 채우는 양반들과 싸워서 이긴 결과일까? 아니다. 대동법의 제안도 실행도 모두 양반들로부터 비롯되었다.

    “관료들이 양반이었고, 지주들이 많았다고 하더라도, 정책을 논의하고 실행할 때 어떤 관료는 정통한 지식을 바탕으로 끈질기게 개혁을 추진하고, 어떤 관료는 사안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며, 어떤 관료는 반대하기도 한다. 방향이 같아도 진단이 다를 수 있고, 그에 따라 급선무를 달리 생각하기도 한다. 재정 안정을 고려할 수도 있고, 군비를 고려할 수도 있으며, 민생을 고려할 수도 있다. 이렇게 다기한 요소를 제도화해 현실에서 운영하는 것이 정책이다.” (127쪽)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환멸은 그들을 정책을 내는 사람이 아닌 계급을 대변하는 사람으로 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팥쥐가 있다. 조선 성리학이다. 사람들은 흔히 조선이 망한 이유를, 현실 감각이 없는 이상주의 성리학자들이 조선을 이끌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라의 발전과 백성의 안위는 뒤로 한 채, 예송 논쟁과 형이상학 논쟁(주리(主理)-주기(主氣))에 대한 담론만 일삼았기에 나라가 강해지지 않고, 일본에게 강제 합병되어 조선이 망했다고 한다. 500년간 이어진 왕조에 대해서 너무 가혹한 평가가 아닐까? 이런 논리는 성리학에 대한 오해에서 시작된다.

    “예를 들어, 주기-주리의 개념을 통해 정치사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실제적인 사상사와 정치사의 분리 현상이다. 일제 시대의 다카하시 도오루의 주리-주기 논리를 이어받은 이병도가 여러 유보적 언사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단칠정 논쟁과 호락 논쟁을 관념적 독단 정도로 이해하고, 나아가 조선 정치사의 흐름을 식민지 시대 일본 학자들의 당쟁론 정도에서 이해하게 되는 근원적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190쪽)

    조직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가를 제시한다. 그리고 조직은 지향하는 이념의 이론을 체계화하고 공고히 한다. 우리는 이러한 이론의 체계화 과정만 싹둑 잘라 놓은 단편만으로 조선 성리학자들을 판단할 수 있을까? 하지만, 결국 관념 논쟁에만 빠져있던 성리학자는 팥쥐가 되고, 현실적인 이단자는 콩쥐가 되었다. 그리고 나쁜 성리학자들은 주자학과 다른 경전 해석을 하거나 유학이 아닌 다른 학문을 하는 좋은 이들을 이단이자 사문난적으로 몰았다. 조선의 지배층은 자아도취에 빠진 히스테리 환자이자, 소인배 집단으로 전락해 버렸다.

    과거 청산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하기 위한 기본 전제이다. 역사 정립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당당하기란 퍽 어려운 일이다. 친일파 청산도 같은 선상에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대한민국의 친일파에 대한 처분은 그리 명백하지 못하다. 아니, 아직도 끌려 다니고 있다. 우리가 당당하지 못한 이유는 혹시 팥쥐가 되어버린 조상 때문은 아닐까.

    마지막 팥쥐는 ‘사대(事大)’이다. 사대란 약자가 강자를 섬긴다는 뜻이다. 후금이 만주에서 흥기했을 무렵 조선의 왕은 광해군이었다. 동생들을 죽이고, 어머니를 폐한 패륜아이자, 끝없는 궁궐 공사로 백성들의 고혈을 짜낸 광해군은 후금과 명나라 간에 실리 외교로 재조명받는 왕이 되었다. 실리 외교를 펼친 광해군은 콩쥐가 되고, 사대주의 명분론으로 국익을 망친 반정 세력은 팥쥐가 되었다. 명분은 헛된 것이고, 실리는 바람직한 것이기 때문이다.

    “명분과 실리는, 같이 가면 좋은 것이 아니라, 원래 같이 가는 것이다. 명분 없는 실리는 오래 가지 못하고, 실리 없는 명분은 공허한 것이다. 곧 원칙 없는 정책, 비전 없는 정책이 오래 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명분과 실리를 나누어 어떤 역사적 사실을 해석했던 우리의 오염된 관점을 이쯤에서 반성해야 한다.” (223쪽)

    정책에서 명분만 있는 혹은 실리만 있는 정책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명분과 실리라는 이분법적 구조에서 명분만 따지는 사대주의자들을 비판할 근거가 생겼다.

    “광해군의 실리주의 외교와 반정 세력의 명분론을 대립시키면서, 이 명분론을 명에 대한 사대주의로 규정했다. 식민사관의 사대주의론은 이렇게 광해군이 부활하면서 완성되었다. 타율성론-사대주의론-실리 외교론은 정교한 이데올로기적 장치이다. 사대주의론은 식민지 조선인, 특히 지식인들에게는 치명적인 상처였다. 죽은 자만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망한 나라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사대주의-명분론 vs 실리론” (235쪽)

    오항녕이 말하는 콩쥐/팥쥐 구조는 완성되었다. 이제 현재 대한민국에서 콩쥐/팥쥐 구조를 맛보기로 하자.


    콩쥐/팥쥐 맛보기

    현재 한국에서 콩쥐/팥쥐 구도를 살짝 대입해보자. 노무현-친노 세력이라는 팥쥐를 만들었다. 콩쥐는 반노 세력이지만, 그 의미의 폭은 확실하지 않다. 애초에 ‘친노’라는 개념 자체를 일부 언론에서 폭력적 이분법 논리로, 더군다나 그 스펙트럼조차 모호하게 퍼뜨렸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들은 노무현을 팥쥐로 만들고, 노무현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을-정책이나 정치력과는 상관없이 필요성이 있다면 어떤 관계든 끌어와서-팥쥐로 몰고 한 패거리라고 몰아붙인다.

    노무현은 나쁜 사람인가? 대통령 시절의 자질 문제인지, 정치적인 이유인지, 자신의 이익과 관련해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노무현은 실패한 대통령이고, 한국을 망쳤기 때문에 나쁜 놈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정책과 반대하는 여러 사람들을 노무현과 함께 팥쥐로 만들어버렸다. 노무현과 관련된 사람은 나쁜 사람이고 노무현을 비판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는 구도를 만들었다. 비판하는 사람 중 문제가 있는 사람은 그들과 무관하다고 말하거나 꼬리 자르기를 하였다. 이는 프레임을 동등하게 형성하지 않고, 편한 대로 형성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이는 논의의 차원을 벗어난 통일성 없는 잣대이다.

    오항녕은 이러한 프레임에 대해 『국화와 칼』이란 책이 출간된 뒤, 마치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이나 21세기 한국 지식인들이 그러하듯이, 일본의 지식인들도 베네딕트가 강제한 ‘표상’에 대응했다. 전형적인 것이 1950년에 글을 발표한 와쓰지 데쓰로처럼 ‘일부 일본인은 그렇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는 식의 대응이었다. 그런데 이 순간 그 프레임에 빠진다. 말하자면 해당 명제에 대항한다고는 했지만 실제로는 내면화해버리는 것이다”(237쪽)고 말한다.


    중용의 역설 : 진짜 우리의 이름은?

    한쪽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적절한 중도를 선택하는 것. 그것이 다른 이들을 되도록 자극하지 않고 스스로도 자기 시야에 매몰되지 않는, 우리가 전통적으로 장려하는 중용의 미덕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인터넷과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가 주류를 이루는 요즘의 여론 환경에서 사람들은 앞 다퉈 극단을 좇는지도 모른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하나의 극단적인 주장이나 입장이 없으면 주목받지 못한다는, 수많은 정보와 말들의 편린 속에서 묻혀버릴지도 모른다는 강박이 시나브로 우리의 의식을 점령해버린 것은 아닐까.

    그러나 예컨대 ‘비겁’과 ‘만용’ 사이의 가운데쯤에서 ‘용기’를 택하듯이 극단(side)과 극단(side)을 피해 가운데를 선택하는 서양 철학에서의 중용 개념과, 동양 철학에서 이야기하는 중용 개념은 사뭇 다르다. 왼쪽의 모서리(side)와 오른쪽의 모서리(side) 사이의 가운데 어디쯤을 선택한다 한들 그것 역시 결국은 하나의 모서리(side)가 될 수밖에 없다. 동양 철학에서의 중용이란 단지 입장의 양 극단을 피하라는 구호에서 끝나지 않는다. 기존에 산재한, 그리하여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는 편견과 미혹 없는 마음으로 사물을 평직(平直)하게 바라보는 것.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기 위한 일련의 공부다. 그러니 역설적으로 중용이란 결국 하나의 온당한 모서리(side)를 가지기 위한 치열한 성찰과 연마(硏磨)를 가리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완벽한 역사의 진실을 추구하지만, 어쩌면 그것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좀 더 나은 방법론을 개발하고 관점을 공유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거기에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진실은 하늘의 몫이지만, 진실에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몫이라고, 성리학의 발달과 함께 사서의 하나가 된 중용의 저자는 말했다. 세상엔 정말로, 콩쥐도 팥쥐도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이름이 콩쥐이고, 팥쥐일 필요는 없다. 콩쥐와 팥쥐 사이, 진짜 이름을 찾은 사람끼리 있는 힘껏 자기 모서리를 부딪치고 또 조율하는 세상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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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힘오항녕 저 | 역사비평사
    세계사적으로 볼 때, 500년을 넘게 왕조를 이끌어 온 현상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례이다. 결국 없어지기는 했지만 조선이 500년을 버틸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훌륭한 정치 체제, 통치 이념 등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조선을 긍정적으로 보려는 역사학자들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이 책은 조선시대에 대한 기존의 오해와 부정적 시각을 전면으로 반박하고 500년 왕조를 이끈 조선의 저력을 재평가하는 시도이다. 문치주의, 대동법, 실록, 강상 등 조선의 시스템을 분석하며 조선의 가치를 다시 평가하고자 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발렌타인데이 초콜렛 대신 공연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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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스24에서 단연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그 공연, SOUL PLAY. 뭐 독자 중에는 어쩌면 지난겨울 그 어느 특별한 날 보셨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번엔 부제가 다르다. Love Valentine Day로 거듭난 그들의 쏘울이 얼마나 끈적일지, 혹은 무대 위에서도 관객석 커플들을 얼마나 배 아파할지.

    최근 광주, 일산, 대구, 대전, 수원, 부산 등 6개 도시투어를 성황리에 마친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새 앨범 수록곡과 라디오 진행으로 갈고 닦은 정엽, 나얼 등의 화려한 입담도 감상할 수 있다. 15, 16일 이틀간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 경기장에서 열리는 발렌타인데이 콘서트는 전국 투어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자리. 참 발렌타인데이 콘서트를 표방하고 있지만 14일에 공연하진 않는다. 음, 14일엔… 그냥 얼굴 보는 걸로.

    어쨌거나 하루를 참아 그를 위해, 그녀를 위해 작지만 특별한 이벤트를 벌이고 싶다면 이건 참고하고 예매하시라. 예스24 공연 창에서 브라운 아이드 소울을 클릭하면 사랑하는 이에게 메시지를 남길 수 있다. 이미 400여 명이 참여, 사랑하는 연인, 가족, 친구에게 모처럼의 사랑의 멘트 날리셨다. 이 가운데 20명의 사연은 공연 당일 전광판에 게시되고, 그밖에도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사연 소개와 사진촬영, 식사권, 커플티 등의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기회까지 얻는다. 단 2월 10일까지. 꽃다발이나 초콜렛 말고 특별한 이벤트를 원하는 까다로운 그녀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들은 특히 기억하자.


    예스24 이벤트는 하나 더, 예스24마니아 롯데카드 등 제휴카드를 활용하면 브아솔의 공연, 최대 24%까지 할인받을 수 있다.




    이번엔 14일 당일 열리는 공연 맞다. 2월 14일 저녁 7시 30분, 홍대 클럽 몇 곳에서 펼쳐지는 홍대프로미나드 vol.2 핫초코 발렌타인데이 콘서트.

    해마다 난지한강공원에서 그린플러그드라는 이름으로 열리던 락페스티벌을 기억하는 독자들이라면 무척 반가울 터. 아마도 이른 봄내가 묻어나지 않을까? 지난해부터 열리기 시작한 홍대 프로미나드. 홍대를 걷고 싶은 달콤한 산책로로 만들겠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영어 promenade라는 단어 자체가 산책, 산책로라는 뜻. 근래 유행하는 페스티벌 한 번쯤 가본 독자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시간표를 보며 다른 형식의 스테이지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공연을 볼 수 있는 재미, 홍대 프로미나드에도 적용된다. 홍대에 있는 클럽 KT&G 상상마당 라이브홀과 클럽 타, 에반스라운지, 클럽 크랙에서 210분간, 아니 열기에 따라 더 길어질지 모를 뜨거운 공연이 연인의 사이를 더 뜨겁게 할지도.

    그 뜨거운 열기를 책임질 이들은 풋풋한 리듬에도 관객을 춤추게 하는 특별한 마력을 가진 피터팬컴플렉스와 인디를 넘어 주류라 불리는 대중적 가요계로 편입할 때가 됐다 싶은 안녕바다, 음악은 물론 콧수염 하나로, 연기력으로도 다양한 색깔을 보여주는 김지수, 드라마 ‘신사의 품격’ ost로 나와 기자마저 무한반복 들었던 빅베이비드라이버 등 달콤하고 강렬한, 어쩌면 연인보다 멋진 그들이 대기 중이다.

    걷는 사이사이, 유명한 인근 카페들 할인권도 준단다. 연인에게 이렇게 말하자. “초콜렛 대신 따뜻한 핫초코 한 잔, 널 위해 준비했어.”




    앗, 좀 서둘러야겠다. 당신의 외로움과 기억, 그리고 행복을 보듬어줄 공연,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어쿠스틱 카페의 공연 일정이 임박했다. 2월 8일… 발렌타인데이 기념 좀 앞당겨도 된다면. 하지만 값어치는 충분하리.

    고독과 쓸쓸함, 그리고 가끔 느끼는 행복에 대한 마음의 단편들을 마음 속 현(絃)이라 느낀다는 어쿠스틱카페 리더 츠루노리히로.

    어쿠스틱 악기의 매력을 최대한 살린 일본의 뉴에이지 연주그룹 어쿠스틱카페가 아직 생소하더라도 들으면 아실 노래 많다. ‘Last Carnival’, ‘Long Long Ago’ 등과 이번 공연에선 특히 국내 처음 발매될 ‘for your happiness’ 등 신곡,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한 영화 ‘별을 산 날’ OST도 감상할 수 있다.

    여러 연주자가 카페에 모여 자연스럽게 연주하다 결성된 프로젝트 그룹 어쿠스틱 일본을 대표하는 뉴에이지 바이올리니스트 츠루 노리히로가 바이올린을, 아야코와 니시모토 리에가 첼로와 피아노를 연주한다.

    어쿠스틱카페는 여러 연주자가 카페에 모여 자연스럽게 연주하다 결성된 그룹. 인기 록밴드 엑스재팬의 보컬 토시도 한때 이 그룹에서 활동한 적이 있단다.

    이미 한국에도 여러 번 방문해 잔잔한 감동과 공감을 샀던 어쿠스틱카페의 공연, 이번에도 그들 마음 속 현으로 따뜻한 에너지를 선사할 계획이다. 그 에너지 함께 온 사랑하는 이와도 함께 나누시길.




    로미오와 줄리엣은 세기가 지나도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사랑받는 문화 아이템. 이번엔 발레다. 그런데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과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러 간다면 가벼운 다툼 정도는 감안하시는 게 좋겠다. 당신의 연인이 사랑스러운 발레리나와 발레리노 때문에 입을 벌리고 무대를 감상할지도 모르니까.

    발레에 큰 관심이 없던 독자라도 한 해 겨울마다 공연되는 호두까기 인형은 알 터. 뭐 혹시 아니라면 백조의 호수나 지젤 정도는 유명한 발레작품으로 들어봤을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역시 그에 못지않은 전통적인 발레 작품. 1935년 러시아 볼쇼이극장에서 음악이 첫 연주된 후, 1938년 이보 소타의 안무로 초연된 발레작품이 바로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긴 세월, 수많은 장인 예술가들을 거쳐 변모해온 로미오와 줄리엣은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몬테카를로발레단의 상임안무가 장-크리스토프 마이요에 의해 현대적 감각으로 재탄생됐고, 지난 2011년에 이어 다시 한 번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음악은 이탈리아 출신인 마르지오 콘티가 지휘하는 코리아심포니오케스트라가 맡는다.

    특이한 건 5회 공연 중 확정된 캐스팅은 단 2회뿐 나머지 3회 공연의 배역은 마이요의 오디션을 거쳐 공연 직전 관객에게 공지된다는 것. 발레도 피말리는 오디션은 피할 수 없나보다.


    종종 들려온다. 발렌타인데이 후유증으로 이별하는 커플이 많다는 소식. 그래서 미리미리 예방접종이 필요한 거다. 닥쳐서 서두르지 말고 미리미리 예매하시길. 당신의 센스가 빛나는 발렌타인데이를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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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패드로 그림 그리는 76세의 세계적인 노화가 - 『다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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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갤럭시 공책 핸드폰을 샀을 때, 가장 먼저 해보고 싶었던 것이 바로 그림 그리기였다. 핸드폰 광고에도 나오는 창작력을 자극시키는 알록달록한 결과물들은 일상 생활에서의 그림 그리기라는 부푼 꿈을 갖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미대출신인 동생들의 작품이 새 핸드폰에 처음으로 담긴 그림들이 되었고, 그녀들은 정말이지 쓱싹쓱싹 단번에 주저함 없이 그려내었다. 어찌했든 나도 집 쇼파 쿠션의 그림을 따라 그렸으나, 그리는 것만 해도 힘겨웠었다. 뚫어지게 쳐다보고, 보고 또 보고 해서 부단히 노력해서 그렸지만 훌륭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의 첫 장을 펼치면, 주인공인 데이비드 호크니가 저자에게 ‘오늘 새벽을 당신에게 보내줄께요.’ 라는 메시지와 함께 보낸 아이폰으로 그린 그림이 나온다. 아이폰이라면 갤럭시 공책에 있었던 펜도 없었을 텐데, 하나의 멋진 작품이라고 할 만한 자줏빛 새벽이 아이폰 속에 담겨 있었다. 이래서 화가라는 직업이 있나 보다 라는 절망감이 바로 이 책의 첫 장을 펼쳤을 때의 소감이다.


    영국의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에 한 명이다. 그가 그렸던 수영장 시리즈의 그림 한 컷은 내 메신저의 프로필 이미지며, 각종 블로그나 SNS상의 이미지는 그의 그림으로 대표되어 있다. 물론 유명한 회화 작품들도 있지만, 다른 방면으로도 많은 활동을 해내고 있다. 그의 대표적 작품으로도 자주 소개되는 ‘피어블로섬 하이웨이’ 와 같은 포토콜라주 작품이나 <마적><트리스탄과 이졸데>와 같은 오페라의 무대 디자인, 그리고 이론적으로는 카메라 옵스큐라를 이용한 과거 거장들의 그림 기법을 하나의 이론으로 제안하여 미술계의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는 『명화의 비밀』 (한길아트) 이라는 책으로 변역되었다.) 이렇듯 왕성한 호기심으로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이 화가를 저자이자 오랜 친구인 ‘마틴 게이퍼드’가 인터뷰한 내용을 모은 것으로, 호크니의 작품 활동과 견해를 상세하게 소개해 준다.

    드라마나 소설의 작가들은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나 행동, 말투 등을 관찰하고 이를 작품에 반영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 또한 이와 같았다. 호크니는 ‘나는 항상 그림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볼 수 있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림이 없다면, 누가 무엇을 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고 봅니다.’ 라고 말했다. 그림을 통해 세상을 보여주며, 그렇기에 이를 담아내는 화가들 또한 세상을 보는 견해나 방법에 따라, 그림의 표현방법이나 내용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작업실이 있는 영국의 브리들링턴에 머물면서 주위에 있는 숲과 나무를 계절의 변화에 따라 그려낸 호크니의 작품들이 있다. 어느 날은 바람의 변화, 빛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나무나 풀잎들을 하루 종일 관찰만 하다가 머리 속에 담아두고는 그리지도 못하고 돌아가곤 했다. 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열심히 관찰하는 작업을 통해 남들은 평범하게 여겨 지나칠 수 있는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 기쁨을 우리는 아름다운 작품으로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된다.


    비 오는 밤의 브리들링턴 산책로, 2008


    클락 부부와 퍼시, 1970-71

    호크니는 고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등의 최신 기기로 실험적인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편견이 없다. 보통 회화 화가들은 사진이나 디지털화된 작업에 대한 거부반응이 있기 마련인데 호크니는 전혀 그렇지 않다. 아이패드를 최적의 스케치북으로 애용하며 일상생활 속에서의 장면들을 즉각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편리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그 밖에도 포토콜라주 기법과 같이 사진이나 영상에도 많은 관심이 있어서 이를 이용한 작품 활동을 했었다. 그 중에서도 나의 관심을 가장 끌었던 것은 바로 카라바조의 그림을 보고 사진과 같은 이음매를 발견하고는 이를 하나의 이론으로 확장해 나가는 그의 넓은 지식과 실험정신이었다. 그는 실제로 페르메이르(베르메르), 카라바조, 레오나르도 등의 거장들의 그림을 연구한 결과 ‘카메라 옵스큐라’ 라는 렌즈를 이용한 광학도구를 그림을 그릴 때 이용했다는 이론을 주장했다. 이 이론은 물론 미술계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관련도서 ‘명화의 비밀’) 찬반 양론이 뜨거웠던 하나의 이론이었지만, 책 속에서 호크니가 말한 카라바조의 그림 <로마의 천재>라는 작품을 감상하고 있을 때, 그의 뒤에서 “심하군 (C’est terrible)!” 이라고 말했다던 앙리 카르티에-브레송과의 일화는 이 카메라 옵스큐라를 위트있게 뒷받침해 주고 있다.

    물론 이렇듯 그림을 그리는 기술적인 방법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그림과 사람, 그림과 세상에 대한 생각들도 저자와의 대화를 통해 담아내고 있다. 카메라, 아이패드 등의 캔버스와 물감이 아닌 최신장비들로도 작품을 만드는 호크니지만, 사진과 3D TV 와 같은 기술의 발전이 이룩해낸 결과물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말한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크니의 많은 생각과 단면을 통해서 감탄하는 부분은 늘 끊임없이 연구하고, 궁금해하고, 도전하는 젊은이보다 더한 열정이었다. 지식에 대한 탐구, 그리고 삶에 대한 기쁨을 작품으로 표현해 내고자 하는 어느 노화가의 열정이 책 표지에는 오렌지색 스트라이프 티셔츠에 멜빵 바지를 입고 있는 76세의 할아버지를 15세의 호기심 많은 소년으로 보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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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그림이다마틴 게이퍼드 저/주은정 역 | 디자인하우스
    저명한 미술 평론가인 저자가 10여 년에 걸쳐 1960년대 영국 팝아트를 대표하는 팝 아티스트이자 포토 콜라주의 창시자, 일러스트레이터, 한화가, 무대 미술가 등 영국 최고의 화가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데이비드 호크니와 만난 대화한 내용을 기록해 출간하였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수영장 그림 시리즈나 거대한 풍경화, 포토 콜라주 작품 등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매체를 통해 미술작품의 실험을 계속해서 시도해왔다. ‘사람과 그림’이라는 평생의 화두를 가지고 그림이 세상을 ‘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그의 내밀한 작품 세계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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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이 개척자에게 감사해야하는 이유 - 브라이언 이노 < Another Green Worl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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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이언 이노는 음악 팬들에게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와 유투(U2), 콜드플레이(Coldplay)의 앨범 프로듀서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그가 팝 역사에서 인정받는 이유는 단지 프로듀서로서의 활동 때문만은 아니죠. 금주의 명반은 전자음악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브라이언 이노의 1975년 작품, < Another Green World >입니다.


    브라이언 이노(Brian Eno) < Another Green World > (1975)

    존재 자체만으로도 화려했던 글램 록 밴드, 록시 뮤직(Roxy Music)의 두 축인 브라이언 페리(Bryan Ferry)와 브라이언 이노(Brian Eno)는 마침내 서로 다른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밴드 지휘에 있어 프런트 맨 브라이언 페리가 보여주었던 독단적인 모습이나, 프런트 맨 못지않게 막강한 존재감을 자아냈던 브라이언 이노와의 알력 다툼 등 분열의 원인은 여러 가지였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음악적 견해의 차이였다.

    비음 가득한 목소리로 노래 부르는 크루너 가수인 브라이언 페리는 자신의 음색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음악을 노선으로 택해야했다. 보컬의 존재가 직관적으로 드러나는 소울 풍의 팝이 가장 잘 어울리는 종목이었으며 이를 알고 있던 그 역시 록시 뮤직의 아트 록에 아름다운 멜로디를 이식시키려 했다. 그러나 브라이언 이노는 달랐다. 예술 학교에서 습득했던 전위적인 방법론은 실험성에 대한 탐닉을 낳았고 창의성으로 뒤덮인 고민들을 일으켰다. 정형화된 틀에서는 결코 만족할 수 없었다. 좀 더 획기적이고 과감한 결과물을 향해 끊임없이 접근하려 했던 것이다.

    둘의 이 다른 방향성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초기 전자 음악에 관심을 보였던 브라이언 페리도 점차 브라이언 이노의 음악을 탐탁지 않게 여기기 시작했고 브라이언 이노 역시 밴드 음악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록시 뮤직의 세 번째 앨범 < For Your Pleasure >를 제작할 시기에 브라이언 페리가 브라이언 이노의 곡을 제외시킨 일은 반목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사건이었으며 「Do the strand」, 「The bogus man」 등이 수록된 이 앨범은 결국 브라이언 이노에게 있어 록시 뮤직에서의 마지막 음반이 되었다. 1973년의 일이었다.

    탈퇴 이후 브라이언 이노는 빠르게 솔로 활동으로 돌입했다. 신디사이저 사운드나 기타 음향 효과를 첨가하던 제한된 역할에서 벗어나 온전한 아티스트로서의 영역을 확보하기 시작했고 실험성으로 가득한 1974년의 두 작품 < Here Come The Warm Jets >< Taking Tiger Mountain (By Strategy) >를 연달아 발표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5년 8월, 브라이언 이노라는 뮤지션의 전환점이자 앰비언트 음악(ambient music)의 선구작으로 회자될 < Another Green World >가 런던의 아일랜드 스튜디오(Island Studio)에서 녹음을 마쳤다.

    세 번째 솔로 앨범은 글램 록의 요소를 적잖이 가지고 있던 이전의 작품들과는 확실히 다른 유형의 음반이었다. 신디사이저에 의해 변형된 음향이 트랙 전체를 지배했고 서사성을 상실한 짤막한 가사들만이 이따금 보컬의 존재를 확인시켰다. 그러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전위적인 작법에 있었다. 시간의 흐름이라는 멜로디의 수평적 진행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일정한 패턴의 음을 루핑 기법으로 반복시키며 질감의 강도를 확대하는 식으로 풀어나가는 접근은 리듬과 멜로디를 중시하는 고전적인 방법론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의 존 케일(John Cale)이 비올라 연주를 더한 공격적인 트랙 「Sky saw」나 필 콜린스(Phil Collins)의 퍼커션 라인을 기반으로 한 「Over fire island」은 이러한 시도의 전형적인 결과물이었다. 여기에 세련된 음침함을 갖춘 「In dark trees」과 「Sombre reptiles」, 점층적인 전개가 돋보이는 웅장한 일렉트로니카 「The Big ship」 로 대표되는 트랙들은 텍스처를 부각시킨 공간과 그 속을 채우는 기류에 초점을 맞추며 각양의 이미지를 창출하는 절묘한 효과를 낳는다. 공간감과 분위기가 구성하는 환경의 요소가 중심이 되는 앰비언트 음악의 효시로 발돋움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기에 이전 솔로 앨범들에서 보이는 팝과 록적인 측면은 이 작품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프립 앤 이노(Fripp & Eno)라는 이름으로 이전에 협업했었던 킹 크림슨(King Crimson) 출신 기타리스트 로버트 프립(Robert Fripp)의 기타 연주와 브라이언 이노의 고혹적인 보컬이 빛을 발하는 「St. Elmo's fire」와 「I'll come running」, 「Golden hours」는 온전한 가사와 후반부의 기타 솔로와 같은 전통적인 형식의 기준을 대부분 만족시키나 이 역시 정제된 전자 음색과 절제된 곡의 진행에 의해 기존 음악의 성향을 적잖게 잃은 모습이다.

    < Another Green World >는 결국 브라이언 이노의 실험성에서 발현된 과감한 대작이었다. 록시 뮤직 시절부터 이어온 창조적인 사고들은 팝의 영역에 예상할 수 없는 독창적인 방법론들을 가감 없이 이식했고 아티스트의 지위를 새로운 음악의 선구자라는 영예로운 지위로 높이 끌어올렸다. 오늘날 일렉트로닉 음악들이 예술 장르의 영역에서 독립적인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것도, 영화나 게임 등 다방면의 분야에서 널리 활용되는 것도 이러한 접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신디사이저의 마법사와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Multi-instrumentalist)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던 브라이언 이노는 이후 아방가르드의 대가와 앰비언트의 권위자, 그리고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와 유투(U2), 콜드플레이(Coldplay)의 작품에 직접 참여한 실력 있는 프로듀서라는 위치에까지 오르게 된다. 고민을 멈추지 않는 아티스트가 매순간 꺼내들었던 창의적인 카드들은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전무했던 새로운 결과물들로 나타났다. 팝의 저변을 끊임없이 넓혀온 이 개척자에게 우리가 감사해야하는 이유다.


    글 / 이수호 (howard19@naver.com)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3일간의 미스터리! 본격 역사왜곡 코믹 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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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장은 나이 들지만, 여전히 미소 지을 줄 안다: 의 브루스 윌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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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하드 1>


    <다이하드 4.0>

    우리가 <다이하드>시리즈의 1편을 만났던 건, 벌써 25년 전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다. 크리스마스에 아내를 만나기 위해 LA에 온 뉴욕 경찰 존 맥클레인이 빌딩에 갇힌 채, 홀로 테러리스트들과 맞선다는 이 이야기는 예상보다 훨씬 더 큰 인기를 끌었다. 근육질 마초가 주인공이던 액션 영화 속에서 브루스 윌리스는 가장 위급한 순간에도 유머와 여유를 잃는 법이 없는 능글맞은 소시민 영웅 ‘존 맥클레인’ 그 자체가 되어 빛난다. 존 맥티어난 감독이 폐쇄된 공간을 활용한 긴박감과 액션 장면을 연출해 냈다면, 1990년 레니 할린 감독은 공항과 비행기라는 한정된 공간을 활용해 더욱 화려한 액션 장면을 연출해 낸다. <다이하드>시리즈가 지닌 두 가지 장점은 ‘한정된 공간’과 ‘지켜야 할 가족’에 있었다. 그런 점에서 1995년 존 맥티어난 감독이 1편에 이어 다시 한 번 연출한 <다이하드 3>는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변화를 모색한다. 뉴욕이라는 도시 전체를 상대로 한 테러리스트의 공격에 맞서는 이 영화에는 ‘가족’도 ‘크리스마스’도 없다. 첨단 디지털 시대를 맞이해도 여전히 구식인 존 맥클레인의 고군분투를 담아낸 <다이하드 4.0>은 딸이라는 ‘가족’과 최첨단 장비에 맞서 싸우는 존 맥클레인의 아날로그 액션을 대비시키면서 ‘가족’이라는 화두를 다시 한 번 현재에 환기시키는 영화였다.


    6년 만에 다시 부활한 시리즈의 5편 <다이하드 : 굿 데이 투 다이>는 전작들에 비해 배경은 훨씬 방대해졌고 제작비도 1,000억 원대로 역대 최대 규모를 자랑하지만, 러닝 타임은 더 짧아진 채로 개봉했다. 러시아에서 정치적인 사건에 연루된 아들 잭 맥크레인을 구하기 위한 아버지로서의 사랑과 두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액션 장면이 5편의 핵심이다. CIA 요원인 아들과 짝이 되어 테러리스트를 제압하는 이번 시리즈는 차세대 액션 히어로 제이 코트너의 등장과 최고 스턴트맨들이 총동원된 카레이싱 장면 등 스케일도 크고 화려한 액션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이하드 : 굿 데이 투 다이>는 시리즈 중에서 가장 밀도가 떨어지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싱싱한 제이 코트너에 비해 노쇠한 존 맥클레인의 모습도, 허술해진 이야기를 화려한 볼거리로 채워보려는 존 무어 감독의 연출력도 모두 이전 작품들에 비해 부족하고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다이하드 : 굿 데이 투 다이>는 한국에서 <베를린>과 <7번방의 기적>사이에서도 자존심을 지키며 예상외로 선전하고 있다. 브루스 윌리스가 연기하는 ‘존 맥클레인’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능글맞아 보일 정도로 긍정적인 태도가 올드 팬들의 향수를 충족시켜주고 또한 위안해주기 때문인 것 같다. 25년 전 생사를 오가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존 맥클레인은 농담을 할 줄 아는 여유를 가진 영웅이었다. 배트맨의 망토도 스파이더맨의 거미줄도, 아이언맨의 장비도 갖추지 못한 존 맥클레인이라는 소시민 영웅의 가장 큰 매력은 극한 상황에서도 잃지 않는 그 미소와 여유에 있다. <다이하드 4.0>이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했던 시리즈를 다시 한 번 살린 건 브루스 윌리스라는 배우가 가진 매력 때문임은 확실하다. 우리가 바라는 영웅은 철갑을 뒤집어 쓴 슈퍼 히어로가 아니라 퍽퍽한 세상 속에서 웃을 줄 아는 자, 그 여유를 아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존 맥클레인’이라는 캐릭터에 녹아들어 있는 그 변함없는 유들유들함은 브루스 윌리스와 함께 다행스럽게도 전혀 노쇠하지 않았다.


    브루스 윌리스가 미소 짓는 법



    <루퍼>


    <문라이즈 킹덤>

    능청맞은 수다쟁이 혹은 액션영화의 영웅이란 이미지는 늘 하나의 구심점이 되어 브루스 윌리스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의 이미지에 갇혀 자멸하거나, 상업영화의 얼굴이 되어 실패를 거듭하기보다 인디 영화와 코미디로 눈을 돌린 이 배우는 게을러 보이는 인상과 달리 주목할 만한 독립영화와 블록버스터의 경계를 명민하게 오가면서 단 한 해도 쉬지 않고 영화를 찍어왔다. 눈에 띄게 성공한 블록버스터의 중간 중간에 적은 개런티로도 기꺼이 독립 영화에 출연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2012년 브루스 윌리스는 <다이하드>를 포함해서 무려 6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조셉 고든 래빗과 함께 한 액션 SF 영화 <루퍼>, 범죄 스릴러 <캐치 44>, 나이든 영웅들이 모두 모인 영화 <익스펜더블 2>, 액션영화 <파이어 위드 파이어>와 함께 <문라이즈 킹덤>같은 작지만 알찬 영화도 포함된다.


    <펄프 픽션>


    <식스 센스>

    90년대의 브루스 윌리스의 행보는 늘 긍정적이었다. 액션 영웅이란 타이틀을 함께 짊어지고 걸어갔지만 이것은 이제는 한물간 배우가 되어버린 실베스터 스탤론과 정계로 눈을 돌린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와 다르게 그는 그렇게 살아남았다. 하지만 수많은 흥행작들 사이에서도 브루스 윌리스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다이하드>라는 영화가 떠오른다는 점은 어쩔 수 없는 그의 아킬레스 건으로 남았다. 많은 영화에서 주연을 맡아 활약했지만, 영화의 흥행이나 비평적인 실패의 경우 그 중심에 브루스 윌리스가 서 있었던 적이 없다는 사실은 그의 최대 장점이며 동시에 한계가 되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브루스 윌리스는 늘 주인공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다른 배우들과 불꽃 튀기는 경쟁을 하기 보단 그들 사이로 조용히 묻히는 편이다. 그래서 주목할 만한 영화에 출연을 하고서도 그 존재를 강하게 인정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는 <펄프 픽션>에서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지만, 이 영화로 재기에 성공하며 주목 받은 사람은 브루스 윌리스가 아니라 존 트라볼타였다. 그리고 <식스 센스>에서는 할리 조엘 오스먼드에게, <제5원소>에서는 밀라 요보비치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기회를 넘겨주었고, 이보다 앞서 <죽어야 사는 여자>에서는 골디 혼과 메릴 스트립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거의 발휘하지 못했다.


    많은 작품들을 거쳤지만, 영화제와 인연이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지만, 브루스 윌리스는 조급해 보이지 않는다. 존 맥클레인이라는 캐릭터는 조금은 시니컬하고 대부분은 낙천적으로 보이는 브루스 윌리스가 살아가는 방식이 되었다. <다이하드>시리즈는 브루스 윌리스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상징인 동시에 그가 방점처럼 찍으면서 거쳐 가야 할 걸림돌이기도 하다. <다이하드 : 굿 데이 투 다이>를 보면 명확해진다. 이 영화는 브루스 윌리스에게는 거대한 걸림돌이면서 동시에 그를 숨통 트이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브루스 윌리스는 전혀 기죽거나 초라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다이하드>시리즈는 80년대 브루스 윌리스를 영웅으로 삼았던 3040 세대에게 지나가 세월에 대한 향수, 혹은 영웅의 부활 혹은 현존을 꿈꾸는 일종의 판타지 그 자체처럼 보인다.

    한 시절, 우상으로 자리 잡았던 배우들이 인기 시리즈로 복귀하는 것이 팬들 입장에서는 마냥 기대되고 설레는 일만은 아니다. 한때는 어렸지만, 지금은 충분히 나이가 들어버린 시리즈의 팬들은 이미 너무 늙어버린 우상의 모습을 보면서 새삼 자신의 나이를 되돌아보게 되고, 기운 빠져 허덕거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현재의 내 모습을 씁쓸한 입맛으로 느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루스 윌리스의 오랜 팬들은 더 방대하고, 스펙터클해진 액션보다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뺀질거리면서 한 박자 쉬어갈 줄 아는 존 맥클레인 형사의 인간적인 면모에 여전히 반가워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능청스러울 정도로 여유로워 보이는 그의 모습이 오랜 그의 팬들에게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는 부분도 바로 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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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론 스톤을 무대에서 춤추게 만든 노래 - 핑크 마티니 내한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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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 다시 오고 싶습니다”

    미국의 12인조 월드뮤직밴드 ‘핑크 마티니(Pink Martini)’의 이름은 영화 ‘핑크 팬더’와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따왔다. 1997년 데뷔 앨범은 프랑스에서 ‘올해의 곡’과 ‘최우수 신인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됐고, 세계에서 8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한국에서도 CF 등에 그들의 음악이 쓰이면서 알려졌다. 한국 방문은 꼭 3년 만인데, 뜨거움보다는 포근하고 낭만적인 그들의 무대, 빚이라도 내서 이번 콘서트는 꼭 가겠다고 벼르는 블로거들도 있다. 가끔 한국 팬들 생각도 났을까?

    “우리는 모두 또다시 한국 공연을 크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3년 전 한국 관객들은 대단했었죠. 2010년에 처음 한국을 방문했는데 관객들이 우리를 편하게 만들어줬어요. 그래서 3월에 열릴 한국 공연을 다시 기대하고 있습니다.”

    3년 전 콘서트 때 무척 어려운 한국말을 하려고 노력해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다. 혹시 이번에 준비한 건?

    “우리는 공연 중에 다른 나라의 언어를 조금이나마 얘기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이번 공연에서도 다시 시도해 볼 생각이고요.”

    ‘안녕하세요. 핑크마티니입니다. 한국에 올 수 있어 영광입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라는 말 역시 모두 어렵사리 한국어로 구사했던 핑크 마티니는 당시 노래를 부르는 사이사이에도 종이에 적은 글을 보며 우리말로 팬들과 대화를 시도했더랬다. 그들의 가상했던 노력, 올해도 기대된다.


    핑크 마티니 팬 여러분, Brasil을 연습해볼까요?

    2010년에도 3월에 방한했는데 올해도 그렇다. 2013년 3월 서울에서 선보이는 핑크 마티니의 음악적 마띠에르는 어떤 걸까?

    “우리 음악은 모든 인생의 매 순간들 예를 들어 사랑에 빠지고, 이별하고, 또는 즐거운 파티를 즐기고, 심지어 집에서 청소를 하는 순간에도 이 모든 순간들을 아름다운 멜로디로 만드는 것을 꿈꿉니다.”

    그래서 한 번 들으면 빠지게 되나보다. 한국엔 좀 열성적인 팬들이 많아 빠진 팬들은 좀처럼 헤어나오질 않는 편. 특히 해외뮤지션의 공연에서 열광적인 ‘떼창’으로 화제가 되기도 한다. 핑크 마티니가 팬들과 다 같이 불렀으면 하는 노래는 뭘까?

    “‘Brasil’ 이곡은 콩가 리듬으로 시작하며 우리는 늘 공연의 마지막을 이 곡으로 공연장 안에서 모두가 춤추고 즐기는 시간을 갖습니다.”

    기자 역시 공연까지 한 달 남짓 기간, 오늘부터 ‘Brasil’ 외워볼 테다.


    샤론 스톤까지 춤추게 하는 음악?

    월드뮤직 밴드라는 이름에 걸맞게 핑크 마티니가 선보이는 클래식, 재즈, 보사노바, 칸소네, 삼바, 심지어 엔카 음악 모두 물론 들을 때마다 산뜻하지만, 한편으론 오래되고 편한 명품 옷처럼 깊이도 느껴진다. 노하우가 있을까?

    “우리 노래들은 1963년 이전에 만들어진 오래된 영화, 사진, 음악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건 현재 우리 밴드가 과거를 지나 2013년 지금 공연을 하고 있지만 옛 것과 현재의 세대 차이를 좁히고, 사람들에게 어떤 형태, 모양, 사이즈를 불문하고 어디에서든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좀 다르게 물어 보자. 질문지를 작성하는 내내 핑크 마티니의 음악을 들었다. 그저 이어 들었을 뿐인데 어떤 곡엔 미소가 떠오르다가도 또 어떤 곡엔 눈물이 나고, 또 다른 곡엔 사무실임에도 불구하고 리듬을 타게 된다. 기자에게 마법이라도 건걸까? (샤론 스톤이 이해된다.)

    “한 가지 우리는 고풍스러운 로맨티시즘의 감각을 해석하고 표현하는데 고심하는데요. 이것은 당신이 마치 집에서 1940년에서 1950년 시대의 헐리우드 영화를 보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일 겁니다. 이건 많은 사람들을 위해 우리 음악이 그들을 순수하고, 로맨틱하고, 매력적인 곳으로 이끄는 것과도 같죠.”

    1997년 칸 영화제에 참석한 샤론 스톤이 이들의 연주를 듣다가 흥에 겨워 무대에 올라 춤을 췄다는 유명한 일화는 핑크 마티니를 빛나게 하는 단편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




    핑크 마티니의 가사는 미시적 거대 담론

    선율의 마띠에르 만큼이나 신선한 게 바로 가사. 따뜻하고 사소하고 일상적인, 하지만 때론 거대담론을 생각하게 하는 가사가 사랑스럽다. 멤버 중 누구의 생각이 많이 담길까?

    “우리 노래들의 절반 정도는 멤버들, 친구, 가족들을 소재로 가사를 쓰곤 합니다. 다른 나머지는 세월을 거쳐 우리가 발견한 옛 것으로부터가 아닐까 싶어요.”

    핑크 마티니의 음악은 절묘하게 다양하면서도 핑크 마티니표라는 수식어는 잊지 않는다. 하지만 엔카까지 일본어로 부르며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보컬 차이나 포브스의 고충도 있었을 것 같은데?

    “사람들은 20개의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차이나 포브스는 영어, 불어, 아랍어, 일본어, 한국어 등 여러 다른 언어로 노래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어 노래, 이번 공연에 혹 들을 수 있을까?




    코스모폴리탄 핑크 마티니

    언론에선 핑크 마티니의 음악더러 코스모폴리터니즘이나 느림,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음악적 성향이 있다고 평한다. 핑크 마티니가 생각하는 음악적 철학은 어떤 걸까?

    “우리 모두가 듣고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음악은 늘 아름다운 멜로디와 함께여야 하고요.”

    흠, 답변이 너무 짧다. 하지만 지면 인터뷰가 아니었더라도 길게 답하게 하긴 어려웠을지도. 기자의 짧은 영어 실력뿐 아니라 그들의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답변은 더 길 필요가 없으므로.

    그렇다면 이번엔 정의를 내려 보자. 핑크 마티니에게 코스모폴리탄이란?

    “라디오 플라이어 웨곤, 폴로라이드 카메라, 파리의 봄, ‘Shiny’, 그리고 늦은 밤의 파티들.”

    핑크 마티니에게 자주 붙는 수식어, 코스모폴리탄. 핑크 마티니가 느끼는 이 단어의 느낌은 오래됐지만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곁에 남는 것들인 걸까?


    원고를 쓸 때 주변의 작은 소음이 격한 방해가 될 때가 있다. 그래서 기자는 귀에 감기면서 평상심을 유지하게 해주는 힘이 있는 음악을 BG로 사용한다. 앞으로 한동안은 작업 중에 핑크 마티니의 음악만 듣게 될 것 같다. 참, 새 앨범은 지금 작업 중이란다. 지금까지 15곡 이상 녹음을 마쳤고, 서울에 도착하기 전까지 앨범 발매일을 결정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콘서트에선 그들의 2013년 봄버전의 새 노래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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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진짜로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나? - 『민주주의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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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얼마 전 대선으로 국민의 절반은 무척 기뻐하고 나머지 절반은 무척 낙담했다. 그러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어쨌든 사회 복지가 정책의 전면에 등장할 것이며, 비리 척결에도 박차를 가할 것이기에 어느 정도 정치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라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찌됐든 이제 선거는 비교적 공정하게 치러지기에 정치 행위는 대다수 선거권자의 의사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정치의 개선은 국민 모두의 사회 문화적 책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 주변에 늘 전경들을 볼 수 있었던 대학 시절을 생각하면 꽤나 좋은 사회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보란 듯이 정권 말기가 되면 비슷한 문제들이 터지고 고질적인 병폐가 반복된다.

    흔히들 지금의 한국 사회를 소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시대, 실질적 민주주의 시대라 부르곤 한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제 정치적으로 안착한 상태이니 무엇보다 시민 삶과 관련된 민주주의의 내실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경제 민주화니 교육 민주화니 사회 복지니 반값 등록금이니 하는 말들은 다 비슷한 말들이다. 그러나 내실을 기하는 이 모든 문제의식들은 한 가지 논점을 기정사실로 전제한다. 말하자면 우리 사회는 민주화된 사회이다. 정치, 문화, 경제, 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자유롭게 의사 표현할 수 있고 단체를 결성할 수 있으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정말 그런가.


    민주주의의 역설

    일반적으로 현대 민주주의는 근대 정치의 산물로 여겨진다. 그러나 사실 근대 정치사상가 중 자신의 이론에 민주주의란 이름을 붙여가며 논의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정기적인 인민 집회를 통해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하려던 장 자크 루소조차도 민주정은 역사상 결코 실현될 수 없는 제도라 말한다. 오늘날 민주적이라 평가되는 사상들을 피력할 때 그들은 오히려 공화주의나 입헌주의란 표현을 즐겨 사용하곤 했다.

    근대인들에게 민주주의란 고대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를 의미했으며, 쉽게 대중 선동에 휘말려 소크라테스를 죽일 수도 있는 정치 제도 정도였다. 그렇다면 현대인이 그렇게 목말라하고 찬양하는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과연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테네 중우 정치의 위험을 극복했는가. 민주적 자유는 정치적 억압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가. 민주적 평등은 사회적 차별을 능동적으로 극복하는가. 아니면 오히려 절차적으로 보장된 더 많은 자유와 평등이 더 쉽게 억압과 차별을 조성하지는 않는가.

    샹탈 무페는 바로 이 역설의 관점에서 현대 민주주의를 분석하고자 한다. 그가 말하는 민주주의의 역설이란 간단히 말해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간의 결코 화해될 수 없는 긴장을 의미한다. 언뜻 보면 이상한 말처럼 들린다. 우린 분명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기에 말이다.

    그러나 그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애써 민주주의의 계보를 좇아가며 힘들게 에둘러 갈 필요는 없다. 우리 삶에 흔히 문제되는 것들은 자유와 평등 간의 충돌로 요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대기업에게 영업의 자유를 먼저 보장해야 하는가, 아니면 골목 상인들의 평등한 상권을 우선적으로 배려해야 하는가. 교육의 평등을 고려해 등록금을 없애야 하는가, 아니면 경제적 능력을 고려해 자유롭게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가. 왜 내가 자유로운 직업 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돈을 타인의 평등한 복지를 위해 세금으로 내야 하는가. 나는 정치가를 자유롭게 비판한 것뿐인데, 왜 그 정치가는 자신의 평등한 인권이 침해되었다고 고소하는가.

    사실 근대의 많은 사상가들이 꺼려했던 민주주의란 표현이 대중적으로 일상화된 것은 자유, 평등, 박애를 이념으로 한 프랑스 혁명 전후 시기였다. 이 혁명 이념들이 민주주의 정치사상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850년대 이후부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때의 논의들은 대부분 자유와 평등을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들로 가정한다. 나치에 이론적으로 봉사한 독일의 칼 슈미트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무페의 역설은 이 슈미트의 민주주의 이론에 의거한다.


    슈미트의 경고

    독재에 봉사한 사람의 이론은 물론 위험하다. 그러나 위험하다고 해서 전혀 교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슈미트는 나치 당원에 가입하기 이전부터 현대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파헤치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민주주의(democracy)는 원래 인민 즉 데모스(demos)의 지배(kratia)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민이 있어야 하고, 이들의 지배권이 있어야 한다. 인민 주권이란 말이 뜻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지닌 인민은 지구상의 모든 인간일 수 없다. 주권을 지닌 인민이란 엄밀히 말해 민족적 지리적 문화적 역사적으로 어느 정도 동질적인 공동생활을 영위해 온 사람들로 국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권을 지닌 인민이란 그런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평등 개념이지 지구상의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무차별적인 개념일 수 없다. 이러한 인민 주권 개념에 기초해서만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유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제한을 철폐하려는 흐름이 있다. 자유(freedom)란 본래 어떤 제한이나 속박으로부터(from) 벗어남(free)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어야 하고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하거나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슈미트는 자유주의가 경제적 개념이지 결코 정치적 개념이 될 수 없다고 역설한다. 자유주의 경제 논리에 의거해 발발한 제1차 세계 대전이 많은 국가의 주권을 침해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요즈음 글로벌 세계 시장이니 인터넷 국제 소통이니 하는 것들도 슈미트에겐 민주주의 국가의 정체성을 해치는 흐름일 뿐일 것이다. 막대한 피해 보상금을 떠안고 허덕이던 패전국 독일의 인민으로서 슈미트의 고민은 그러했다.

    따라서 슈미트의 결론은 이렇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경제적 자유주의에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제한적 인민의 평등한 주권을 해체하는 모든 요소는 제거되어야 한다. 히틀러의 민족사회주의(Nationalsozialismus)가 인종을 차별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것과 잘 맞닿는다. 그렇다고 슈미트의 결론을 무조건 부정할 수만도 없다. 우파든 좌파든 민주주의 정치는 어느 정도 제한된 평등 개념에 기반을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정치가 자유주의를 무제한 허용하게 되면, 국가적 정체성이 뒤흔들릴 수 있고 시민의 공동체적 삶이 파괴될 수 있다. 과도한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점점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무페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평등과 자유의 결코 화해될 수 없는 긴장을 슈미트처럼 상호 배척적인 권력관계로만 보지 말고 항상적으로 유지되어야 할 경쟁적 대립 관계로 보자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역설은 결코 조화되거나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한 편의 승리만 노릴 수도 없다. 차라리 이 역설을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인정하고 상호 다원적 경쟁의 관계로 확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실 민주주의 진단

    민주주의의 역설을 한 편의 승리를 통해서만 해결하려 할 때 생기는 문제점들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제한적 평등이 극단화되면 북한 같은 사회가 될 것이다. 시민의 자유가 억압당하고 다른 민족이나 시민에 대한 차별 의식이 기세를 발휘할 것이다. 민족의 평등한 주권 운운하며 매년 북쪽에 풍선을 날리는 사람들의 극단적 민족주의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자유주의가 무제한적으로 허용되면 양육강식의 사회가 될 것이다. 대기업의 골목 상권 침입도 자유라는 인권에 의거해 정당화되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흔히 받아들이는 위험한 자유주의도 있다. 이른바 재테크라는 말로 통용되는 우리 일상의 돈놀이가 전부 그렇다. 집이 기본적인 거주의 평등한 보장을 넘어서 개인의 자유로운 자본으로 인식된다.

    땅도 마찬가지이다. 기업가만 자본가가 아니라 집이나 땅, 어떤 것이든지 팔 수 있는 것을 가진 자는 다 자본가이다. 재산 증식을 위해 대출까지 받아가며 집을 사고 땅을 사고 주식 시장으로 몰려간다. 그 속성으로 볼 때 자본주의가 이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과도한 자유주의는 의회 정치에도 나쁜 영향을 끼친다. 자유로운 의사 진행 발언으로 끊임없이 회의만 하고 국가 중대 사안의 결정은 한없이 지연된다. 그러다 안 되면 날치기를 한다. 모두 자유주의가 민주주의를 침식해 평등을 무제한적으로 허용할 때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무페는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이 대부분 자유주의에 침식당한 것으로 진단한다. 특히 시민의 자유라는 수식어로 재산 증식의 기회를 보장하는 정책을 무수히 쏟아내는 인기 영합적 우파 정당이 많은 국가들에서 권력을 잡았다. 전통적으로 복지를 주장하던 좌파 정당들은 이미 신자유주의에 스스로 백기를 들었다. 그래서 복지조차도 승리한 우파의 담론이 되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우파의 복지 정책이란 자유로운 경쟁에서 이긴 자가 자비롭게 나눠주는 혜택 그 이상이기 어렵다. 언제쯤 우리는 가난한 자가 자존심을 구겨가며 혜택 받지 않을 수 있을까. 복지는 목마르게 간청하는 혜택이 아니라 평등한 시민의 기본권이어야 한다.

    그러나 무페의 경쟁적 다원주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좌우 경쟁 세력들 간의 상호 인정이 필요하다. 복지가 경제 논리에 의해 희생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좌파가 필요하고 자유로운 삶이 인민의 평등 논리에 의해 억압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우파가 필요하다. 이렇게 경쟁적 다원주의는 좌우파 정당의 존립을 기본적으로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런 구도 하에서 매번 선거를 통해 한 쪽이 권력을 잡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을 잡았다고 해서 다른 한 쪽을 정치적 심의 과정에서 배제해서도 안 된다.


    민주적 합의의 조건

    그렇다면, 경쟁적 다원주의에서 민주적 합의는 어떻게 도출될 수 있을까. 흥미롭게도 무페는 민주적 합의 모델로서 존 롤스나 위르겐 하버마스가 아니라 분석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을 참조한다. 그가 보기에 롤스는 자유주의에, 하버마스는 민주주의에 너무 편향되어 있다. 어느 쪽으로 편향되어 있든 이들은 모두 자유민주주의의 합리성을 추구한다.

    그러나 정치의 본질은 권력을 잡는 데에 있지 합리성을 내세우는 데에 있지 않다. 그리고 선거를 통한 권력 획득의 기준은 언제나 시민들의 삶의 형태를 어떻게 구성하는가에 있다. 자유주의가 더 옳은지, 민주주의가 더 옳은지, 자유민주주의 말고 더 좋은 체제가 있는지, 이런 문제들은 모두 경쟁적 다원주의의 과정을 통해 결정될 열린 문제이지, 정치 행위 이전에 미리 결정되어야 할 닫힌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권력 획득을 본질로 하는 정치 행위는 차라리 비트겐슈타인의 맥락주의에 의거해 이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이에 따르면 경쟁하는 다원적 정치 세력들은 정치 현장에서 시민의 삶을 놓고 언어 게임을 하는 것이다. 이 게임에서 더 나은 시민의 삶의 형식을 제공한 쪽이 권력을 획득한다.

    그러나 물론 권력 획득과 행사에는 엄중한 책임이 따르며 경쟁 세력들과의 긴장 관계 속에서 늘 심판받는다. 경쟁적 다원주의에서 집권 세력은 언제나 일시적인 승리자일 뿐이며, 모든 합의는 잠정적 헤게모니의 일시적인 결과일 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건강한 민주주의라면 언제나 민주적 대립 자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결정이든지 늘 배제되는 세력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일시적 결정을 절대화해 반대하는 세력을 제거하려 해서는 안 된다. 경쟁자 없는 정치는 항상 독재로 치달았다. 그때마다의 결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결정에 반대하는 세력을 경쟁자로서 인정하고 표출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무페가 제시하는 문제의식과 그 대안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자유민주주의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역설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정적(政敵)을 제거하는 것은 참된 민주주의가 아니다. 갈등과 대립은 민주주의의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그 건강성의 지표인 것이다.

    그러나 단지 이런 이론적인 흥미만 생기지 않는다. 지난 선거철에 모 대학 교수는 좌파의 비판을 재비판하는 일방적인 보고서를 학생들에게 과제로 냈다고 한다. 요즈음은 과격한 정치적 의사 표현으로 인터넷을 도배하는 자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누구는 처벌받고 누구는 점잖게 계도된다. 비리로 투옥된 전직 대통령 가족은 벌써부터 사면한다고 난리다.

    우리에게 한번이라도 건강하고 책임 있는 경쟁 관계가 유지된 적이 있는가. 교육도 직업도 재산도 승자독식이 합리화되는 사회에서 정치마저 날치기를 빈번하게 일삼는다. 우리는 진정 민주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읽을거리

    현대의회주의의 정신사적 상황

    카를 슈미트 저/나종석 역 | 길

    샹탈 무페의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슈미트의 책을 한두 권 읽어보는 것이 좋다. 다행히 국내에 슈미트 저서가 적잖이 번역되어 있다. 특히 최근에 번역된 이 저서는 현대 정치에 견주어 볼 수 있는 의회민주주의의 문제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으며, 옮긴이의 탁월한 해제도 큰 도움을 준다.






    거대한 전환

    칼 폴라니 저/홍기빈 역 | 길

    경제 교양 도서로 이 책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자유주의 시장 경제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를 경제사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폴라니의 결론은 경제적 자유주의가 한 번도 자유주의적으로 관철된 적은 없으며, 언제나 정치 세력의 인위적, 비자유주의적 정책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는 것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나치의 등장을 자유주의의 폐해에 대한 반발로 해석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공통 도시

    조정환 저 | 갈무리

    저자는 안토니오 네그리의 개념들을 사용해 1980년 광주 항쟁 이후의 한국의 역사를 신자유주의의 정착 과정으로 분석한다. 네그리가 사용한 다중, 삶권력, 제헌권력 등의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지만, 최근의 한국사를 정치와 경제의 관계 속에서 분석한다는 측면에서 흥미로운 책이다. 특히 전 지구적 주권자로서의 다중 개념은 슈미트의 제한적 평등 개념과 맞세워 비교해 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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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의 역설샹탈 무페 저/이행 역 | 인간사랑
    민주주의에 관한 이론적 논쟁에서 무페교수는 하버마스와 롤스의 합의적 모델과 기든스의 제 3의 길을 주요 논적으로 삼는다. 근대 민주주의를 확고한 규범적 원칙에 정초시키려는 전자와,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중도적 합의를 내세우면서 전통적인 계급 갈등을 스스로 포기하는 기든스의 이론적, 실천적 불모성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대안으로 민주주의의 경쟁적 모델을 이 책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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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긴 ‘지금’과 더 큰 ‘여기’ - 『깊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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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여행을 즐기지 않는 편이었다. 명소에서 관광객 행세를 하고 다니는 것은 도리어 내가 구경거리가 되는 것 같아서 싫었고, 그렇다고 남들은 가지 않는 미개척지를 발굴할 만큼 부지런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이런 성향은 환경적인 요인일 수도 있는데, 왜냐하면 아버지는 늘 여름마다 한 번쯤 일간지 1면을 장식하는 해운대 인파를 보면서 “어디 바다에 발은 적시고 오겠냐” 며 혀를 차시는 분으로, 자고로 남들 움직일 때는 집에서 쉬는 것이 최고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래도 바다며 산으로 놀러 가자며 때를 쓰는 아이가 아니었던 것은, 어린 마음에도 내리 쬐는 태양을 맞으며 타인과 부대끼는 것보다 시원한 집에서 뒹굴거리다가 엄마가 주시는 수박을 먹는 것이 더 득 될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 그러면 이건 환경이 아니라 천성인건가?

    아버지마저 대학생일 때 한 번쯤은 멀리 여행을 해야겠지 않느냐며 등을 떠미셨던 이십 대 초반에도 결국은 떠나지 않았던 건, 이미 이런 생각이 굳어졌고, 무수히 여행이며 연수를 다녀오는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도대체 신통한 구석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동하는 수고로움, 비용, 환상적인 안내 책자(or 여행 후기)와 현지의 갭 등등. 그 정도 노력을 들인 일상에서의 탈피라면 대단히 마음의 안식이 되어주던가, 몸의 휴식이 되던가, 아니면 한 사람의 무언가를 변화시킬 만큼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결국 여행은 들이는 노력에 비해 남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었다. 그래서-상대적으로 휴가 기간이 짧은 대한민국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입사하고 첫 여름 휴가를 맞았을 때, ‘휴가=여행’인 주변 분위기가 상당히 낯설기도 했다. “**씨는 이번에 어디 가?” 라고 묻는 물음에 “네… 저는 그냥 집에서 쉬려구요”라고 대답 하는 일이 어쩐지 오답인걸 아는데 뭐라도 적어 내야 하는 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그러던 내가 여행에 재미를 느낀 건 입사 후 두 번째 맞는 여름 휴가 때였다. 제법 마음이 맞는 동기들과 2박 3일의 여행 계획을 짤 때만 하더라도, ‘친구랑 여행 갔다가 완전히 틀어지는 경우도 있다던데’하는 걱정이 마음 한 켠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내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그 2박 3일은…정말 즐거웠다. 이방인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기웃기웃 유명한 관광지며 맛집을 찾아 다니는 것도, 낯선 곳에서 긴장과 여유를 적당히 조화시켜 마음을 풀어 놓는 것도, 심지어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한 것 까지도 새로운 경험이 주는 설렘과 흥분이었다. (동행인들이 심히 괜찮았다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인 것 같기는 하다) 여행을 하지 않는 것은 삶이라는 책의 한 페이지만 읽는 것과 같다, 고 지나치듯 읽었던 구절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이었달까. 나에겐 여행지이지만, 그곳을 생활의 반경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이전에는 거북했다면 이제는 적당한 관심과 동경을 가질 여유가 생긴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 여름의 열기가 끝날 무렵, 나는 또 무작정 일본 여행을 결정해 버렸다.

    태어날 때부터 역마살이라도 품고 있던 것처럼, 그 후부터 나는 늘 어딘가 가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그 안달을 못 참고 무작정 떠나 본 곳도, 아직 열심히 꿈꾸고 있는 곳도, 나에게는 모두 ‘여행’이라는 환상의 이름으로 같은 목록에 묶였다. 저 땅끝 남해와 붙어 있다는 어느 이국적인 도시, 쇄빙선을 탈 수 있다는 섬부터 모래 언덕이 있는 사막까지. 여행지에 대한 정보는 찾으면 찾을수록, 죽기 전에 내가 이걸 다 가볼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끝이 없었다. 그런데 30년 이상을 기자로 활동한, 세계 지도를 펼치면 안 가본 곳을 꼽는 것이 더 빠를 것 같은 이 아저씨는 ‘흔들 의자에 앉아서 마음으로’ 여행을 하라니. 그래, 당신은 가볼 만큼 가봤다 이거지, 하는 마음으로 『깊은 여행』을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실 이 책은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여행에 관한 책이 아니다. 굳이 여행과 연결 지어 보자면, 이 책의 원어 제목을 직역한, ‘움직임’ 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는 것이 어떨지.

    많은 사람들이 쉽게, 심지어는 너무 당연하게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임무를 여행에게 맡긴다. 새로운 볼거리, 먹거리, 사람들, 자극이 되는 모든 것들은 분명 여행이 주는 즐거운 요소들이다. 하지만 어쩌다보니 어긋난 일정, ‘새롭다’는 말로는 커버하기 힘든 현지의 불편함, 인파, 바가지 등도 마찬가지로 여행에 포함된다. 전자를 더 크게 보는 긍정적인 이들도 분명 많겠지만, 그런 그들 마저도 ‘집떠나면 고생이지’ ‘역시 집이 최고야’라고 느끼는 순간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불평하더라도, 또 다음 휴가가 오면 어김없이 여행지를 찾아 표를 끊고야 만다. 이렇게 습관적인(거의 의무적이기까지 한) 여행의 반복이, 과연 일상에 ‘활력’을 줄까?

    여행의 본질은 ‘변화’에 있다고 옮기는 토니 히스는, 그저 ‘떠남’을 위한 여행에 젖어가던 나를 멈추게 한다. 낯선 풍경, 낯선 시간, 익숙한 이곳이 아닌 그 어딘가로 옮겨가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움직임 속에서 내 마음과 몸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살펴보게 하는 이 책은, 문득 여행을 시시한 것으로 생각했던 내 시절과 그 이유를 떠오르게도 했다. 그 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여행의 진짜 모습은 반의 반도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반드시 낯선 곳으로 떠나지 않아도 되는, 지금 당장 여기서도 할 수 있는 토니 히스의 『깊은 여행』에는 ‘그곳’ 이나 ‘그 때’가 아닌 ‘내가 머무는 지금, 여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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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여행토니 히스 저/김양희 역 | 21세기북스
    『깊은 여행』은 반드시 낯선 장소로 떠나지 않아도, 언제 어디에서든 할 수 있는 여행이다. 토니 히스는 누구에게나 잠재된 능력으로 제한된 시공간을 벗어나 과거와 미래의 모든 장소를 여행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여행에 관한 단순한 에세이가 아니라 우리의 육체와 정신의 움직임에 대한 고찰을 통해 변화를 촉구하는 구호에 가깝다. 진정한 여행은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이쪽의 안락함과 저쪽의 두려움 사이에서 한참을 저울질하는 것이 아니라 용기를 내어 문을 열고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우리의 도전에 마법과도 같은 ‘깊은 여행’의 주문을 알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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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펑크의 새로운 조류, 피펑크(P. Funk)의 탄생! - 펑카델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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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펑크(Funk)음악이라 하면 어떤 이미지가 연상되시나요. 아프로 펌 헤어스타일을 하고 몸을 흔들며 기타를 치는 흑인 기타리스트의 모습을 연상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흥에 겨운 몸짓으로 드럼을 치는 드러머의 역동적인 모습을 상상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여기, 펑크의 그런 이미지를 알리는 데 기여한 그룹이 있습니다. 이 주의 명반, 피펑크(P-Funk)의 태동을 알린 펑카델릭의 데뷔작, < Funkadelic >입니다.


    펑카델릭(Funkadelic) < Funkadelic > (1970)

    1960년대 말은 팝의 황금기가 움트기 시작한 때였다. 영미권 전역에 퍼졌던 사이키델리아의 잔향은 여전히 화려했고 하드 록의 맹렬함이 기지개를 막 켜고 있었다. 록에 클래식을 대입했던 프로그레시브 주자 킹 크림슨(King Crimson)이나 예스(Yes) 등이 곧 이어 등장했으며 ‘소울의 대부’이자 ‘펑크(funk)의 선구자’인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과 레코드 회사 모타운이 이끄는 흑인 음악 진영은 활발히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어떤 음악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시기였다. 수많은 밴드들이 앞다퉈 등장했기에 대중음악 판도에는 매일같이 지각 변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명작이라 손꼽힐 음반들이 쏟아져 나왔고 명연이라 회자될 공연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오늘날 전설의 지위를 점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은 당대의 시류에 과감히 뛰어들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펑크(funk)의 저변을 넓혔다고 평가받는 펑카델릭(Funkadelic) 또한 이러한 아티스트들 중 하나였다.


    펑카델릭(Funkadelic) [출처: 위키피디아]

    두왑(doo-wop) 그룹 팔리아멘츠(The Parliaments)를 이끌던 조지 클린턴(George Clinton)은 백 밴드 세션들의 군 입대로 생긴 빈자리에 새로운 멤버들을 불러들였다. 훗날 「Maggot brain」에서 엄청난 기타 연주를 들려줄 에디 헤이젤(Eddie Hazel)과 베이시스트 빌리 넬슨(Billy "Bass" Nelson)이 공석을 메웠으며 이윽고 또 다른 기타리스트 루시우스 로스(Lucius "Tawl" Ross)와 드러머 라몬 펄우드(Ramon "Tiki“ Fulwood)가 추가 영입으로 힘을 보탰다.

    재정비를 마치고 활동을 이어가던 이들에 반기를 든 것은 음반사 레빌롯 레코드(Revilot Records)이었다. 빌보드 차트 3위의 히트 싱글 「(I wanna) Testify」를 제작했던 음반사는 재계약을 거부한 조지 클린턴에게 그룹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고 밴드는 더 이상 팔리아멘츠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다른 방도가 없었다. 심술궂은(?) 전 소속사의 결정은 옆에 제쳐둔 채 이들은 새 명칭을 구상해야 했다.

    펑카델릭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안한 사람은 빌리 넬슨이었다. 펑크(funk)와 사이키델릭(psychedelic)을 결합한 이 단어에는 「Good old music」 등으로 전부터 보여주었던 음악적 관심사와 환각제 LSD을 통해 흥미를 가졌던 문화적 관심사가 모두 담겨있었다. 그룹의 특성을 드러내기엔 더할 나위 없이 적확했다. 새로운 이름을 가진 이들은 곧 디트로이트에 위치한 레이블 웨스트바운드(Westbound)와 계약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70년 첫 선을 보인 것이 바로 이 셀프 타이틀 앨범 < Funkadelic >이다. ‘당신이 내 영혼을 빨아들인다면 난 당신의 펑키한 감정을 핥겠다’는 괴이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조지 클린턴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이 음반에는 펑카델릭이 지향하는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 식(Sly And The Family Stone)의 펑크 사운드와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식의 사이키델릭 록 사운드가 모두 담겨있었다.

    첫 곡 「Mommy what's a funkadelic」에서 조지 클린턴과 백 보컬의 합창 너머로 들리는 오르간과 와와(wah-wah) 기타의 구성은 밴드가 추구하는 방향성을 적잖이 드러냈으며 팔리아멘츠 시절에 보여주었던 펑크 넘버 「Good old music」은 펑카델릭의 메소드가 덧입혀지며 8분이 넘는 싱글로 재탄생되었다. 특히 그루비한 베이스 리듬 위로 기타와 키보드, 보컬이 시종일관 교차하는 「I bet you」는 이들의 P-funk(Parliament-Funkadelic 또는 Pure funk) 스타일을 확립하는 결정적인 트랙이었다.

    펑카델릭 멤버들 외에도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참여하여 작품의 질을 높이기도 했다. 그 결과물 중 하나인 「I got a thing, you got a thing, everybody's got a thing」에는 밴드의 두 번째 앨범부터 공식적으로 참여하는 명 키보디스트 버니 워렐(Bernie Worrell)과 모타운의 레코드 세션 펑크 브라더스(The Funk Brothers) 출신인 백인 기타리스트 레이 모넷이 가세한 트랙으로, 둘이 빚어낸 오르간 사운드와 기타 솔로의 조합은 앨범에서 가장 환상적인 곡을 주조하는데 성공했다.

    팝 역사에 있어 펑카델릭의 등장은 또 하나의 큰 충격이었다. 펑크와 사이키델릭 록을 절묘하게 결합한 P-funk는 당대 음악 세계의 저변을 넓혔을 뿐만 아니라 후에 나타난 아티스트들에게도 적잖은 영감을 주었다. 에디 헤이젤이 뽑아내는 기타 연주는 록 팬들을 만족시키기 충분했으며 나중에 더욱 댄서블 해지는 밴드의 리듬 진행 방식은 1970년대에 성행했던 디스코 음악의 원류로도 평가받는다. 또한 투팍(2pac)의 「Young black male」이나 D.O.C.(The D.O.C.)의 히트 싱글 「The D.O.C. & the doctor」의 샘플링 소재로 쓰였던 「Good old music」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 이들의 음악은 1990년대 힙합 뮤지션들에게도 여파를 남겼다.

    펑카델릭의 리더 조지 클린턴은 이후 밴드의 음악 세계를 더욱 넓힌다. 동일한 멤버로 구성한 쌍둥이 밴드 팔리아멘트(Parliament)를 조직하며 펑카델릭과는 다른 우주적 색채의 펑크 음악을 구현했고, 더 나아가 여러 프로젝트 밴드들을 배출하는 P-funk 사단을 구축하며 팝 신에 결코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그 임팩트의 시작은 1970년의 첫 앨범 < Funkadelic >에 있었다.


    글/ 이수호 (howard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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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을 찾아 남쪽으로 떠난 가족 - 임순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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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안해, 고마워>

    2011년 옴니버스 영화 <미안해, 고마워>는 동물과의 교감을 통해 스스로를 발견하게 만드는 관계와 성찰의 영화였다. 배우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제작된 착한 영화의 제작 총괄과 함께 「고양이 키스」라는 한 파트를 만들어낸 임순례 감독은 배고픈 길고양이를 돌보는 혜원(최보광)과 그런 딸이 그저 못마땅한 아버지(전국환)의 갈등과 화해를 그려낸다. 사투리로 티격태격하는 부녀의 모습과 고양이의 사랑스러운 몸짓은 소소한 재미가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특유의 시선으로 바라다보는 현실 인식은 서늘한 면이 있다. 밋밋하고 서늘하다는 표현은 임순례 감독의 작품 특징을 나타내는 주요한 단어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개봉한 <남쪽으로 튀어>는 임순례 감독의 특징이 드러나면서도 또한 동시에 감춰진 영화이기도 하다. 오쿠다 히데오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남들과 달라도 잘 살 수 있다’고 믿는 한 가족의 위기를 코미디로 풀어낸다. 주인공 최해갑은 한때 한국의 체 게바라로 불릴 정도로 유명세를 떨쳤던 운동권 대학생이었으나, 지금은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직함을 내걸고 있다. ‘안 다르크’로 불리던 열혈 운동권 출신 아내 안봉희(오연수),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디자이너의 꿈을 키워가는 딸 민주(한예리), 아버지에게 불만 많은 아들 나라(백승환), 사랑스러운 막내 나래(박사랑)는 해갑과 충돌하지 않고, 든든하게 지원해 준다. 그들은 행복을 찾아 남쪽 섬으로 떠난다. 그러나 평화로운 생활도 잠시, 개발 열풍이 섬을 뒤흔들면서 해갑의 가족은 최대 위기를 맞는다. 일본의 1970년대 세대를 한국의 1980년대 세대로 끌어오면서도 큰 이물감이 느껴지지 않게 잘 각색해 낸다. 사실 일본의 1970년대와 한국의 1980년대의 운동권 세대는 비슷한 경험을 공유했다, 거품 경제의 물결 속에 과거의 이념을 밟고 너도 나도 자본주의의 급물살에 몸을 담아냈을 때, 그 과거의 운동권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는 의문은 원작 소설에도 각색된 한국 영화 속에서도 주요한 화두 중의 하나이다.

    1990년대 한국 민주주의 발전과 자본주의 발전 양쪽 모두에서 중추적인 캐릭터를 담당했던 그들의 속내는 어떨까? 한국에서는 ‘후일담’ 소설로 불리는 많은 작품들에서 어둡고 우울하게 그려졌던 운동권의 이야기는,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에서는 여전히 이상향을 꿈꾸는 수다쟁이 캐릭터로 재탄생했는데, 유쾌함 속에 과거의 신념을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지켜낼 수 있는가 하는 무거운 화두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임순례 감독은 영화를 통해 섬 개발을 둘러싼 대립을 통해 용산 참사, 제주 강정마을을 연상시키는 정치적 상황을 대입하지만, 주요화두로 발전시키지는 않는다. 전작들에서 서늘한 현실 인식을 품었던 감독의 열린 시선을 두고 보자면 곁가지가 많은 에피소드에 극의 흐름이 흩어지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게다가 격하게 밀어붙이는 원작에 비한다면 임순례 감독은 특유의 느린 속도로 감정을 쌓아 격앙시키는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남쪽으로 튀어>가 코미디 영화처럼 포장되어 있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정적이고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게다가 비극을 전제로 하지만, 희극으로 마무리되는 역설적 비장미를 건져 올리리란 기대는 주춤거리다 사라진다. 그의 영화 중 가장 흥행에 성공했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기대하기 보단, 인물 간의 충돌을 통해 정서적 재미를 만들어내는 밋밋하면서도 흥미로웠던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을 기대하면서 극장을 찾기를 권한다.


    쓸쓸하고 안쓰러운 아이들과 동행하다



    <세 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예상외의 흥행 감독이 되었지만, 그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그의 초기 작품들이다. 단편 데뷔작 <우중산책>은 삼류 극장 매표소 처녀의 눅눅하게 비에 젖은 어깨를 감싸 안아준 작품이었다. 그리고 1996년 그의 첫 장편 영화 <세 친구>는 학교와 사회, 그 사이 텅 빈 공간에서 부유하는 세 소년의 모습을 그린다. 세상의 낙오자인 세 친구의 현실은 너무나 쓸쓸해서 아팠다. 임순례 감독은 굳이 그들을 격려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의 인생을 패배라고 낙인찍지도 않는다. 그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보는 감독의 시선 때문에 더 처연한 느낌을 주는 서늘한 영화였다. 그리고 5년 만에 돌아온 영화에서 이번에는 30대 남성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렇게 2001년 제작된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하고 싶은 일을 하려 하지만, 여전히 불행한 30대 밴드의 이야기이다. 존재 자체가 너무 흐릿해서 슬픈 남자들의 모습에서, 감독은 삶의 비극을 관조하지도,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희망을 읊조리지도 않는다. 묵묵히 견뎌내야 하는 삶 속에 그저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 하나 툭 던질 뿐이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날아라, 펭귄>

    이후 행보는 그의 영화처럼 더디고 느리다. 차기작은 <와이키키 브라더스>이후 7년,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스포츠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대표 팀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선수들이 공유한 생애 최고의 순간 속으로 관객들을 이끈다. 그의 전작처럼 영화 속 주인공들은 모두 고단한 삶 속에서 허덕댄다. 하지만, 전작과 달리 이 영화에는 따뜻한 온기가 흐른다. 그는 서른을 넘긴 일하는 여성들을 향한 사회적 편견과 그 한계를 다양한 사례로 재현해 낸다. 그리고 올림픽이라는 사회적인 이슈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개개인의 문제를 등한시하지 않는 한결같은 뚝심에 있다.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은 아줌마의 긍정적 속성들을 희망적인 그림으로 보여준다. 다음 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영화 <날아라, 펭귄>을 통해 그는 ‘인권’이라는 묵직한 소재를 유연하고 낙관적으로 바라본다. 서늘했던 전작들과 달리 관망의 시선으로 따뜻하게 세상을 응원하는 영화였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영화 속 주인공 선호가 아주 작은 꿈조차 품어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임순례의 초기작품의 캐릭터들과 닮아 있지만,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을 기점으로 임순례 감독은 따뜻한 동행과 온정의 기운을 조금씩 담아가고 있다. 감독은 주인공을 보채거나 밀어내지 않고, 그들의 보폭대로 함께 걸어간다. 여행담과 주인공의 성장담까지 그리면서, 감독은 전작들에서 보여준 도시의 황량함 대신 길이 가지는 서사와 풍경이 가지는 넉넉한 넓이와 깊이까지 담아낸다. 주로 경쟁 사회 속에서 부유하는 약자들의 곁에서 소통하고 나누는 법을 그려낸 그가 인권 문제에 이어 동물 복지에 마음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그의 영화는 서늘한 시선 속에서도 지켜내야 할 삶의 따뜻함을 품어내기 시작했다.


    감독은 늘 약자와 동행하지만 세상과 싸우라고 부추기는 법이 없다. 섣부른 연민 없이 불행한 사람을 그려내지만, 그들이 정작 불행한지에 대한 판단은 늘 유보한다. <남쪽으로 튀어>의 최해갑과 그 가족들은 우리 기준에서 불행해 보이지만 사실은 행복한지도 모른다. 철썩 같이 서로를 믿고 의지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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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금살금 다가가면 넘어올까요? -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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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최초의 창작뮤지컬

    그러니까 <살짜기 옵서예>라는 말은 살금살금 다가오시란 제주 방언이다. 어서 오시란 ‘혼저 옵서예’만큼이나 유명한 이 말 <살짜기 옵서예>, 어디에서 들어봤을까? 이렇게 말하면 혹여 기억날지 모르겠다. ‘한국 창작 뮤지컬의 효시로 꼽히는 작품으로, 고전 <배비장전>을 각색했으며 1966년에 발표되었다. 임영웅 연출, 최창권 음악에 한국 발레 무용의 개척자인 임성남이 안무를 담당했다’라고 한다면? 뭐 <배비장전> 정도만 떠올려도 무방하다. 어쨌든 <살짜기 옵서예>는 인터넷 백과사전에도 실릴 만큼 한국 문화사에 남을 작품이다.

    “즐거운 작품이에요. 내용 중에 갈등이나 심각한 건 없지만 배비장전을 각색해서 재미있게 만든 작품이죠. 어린이부터 나이 많은 사람들까지 모두 다 좋아할만한 내용이고요.”

    얼개를 설명해 달랬더니 그저 즐거운 작품이란다. 그런데 자료 뒤져봐도 맞다, 즐거운 작품.
    다만 고전소설 <배비장전>에 애랑과 배비장의 사랑이 좀 더 지극해지고 현대적 감각이 더해졌달까? 진정한 사랑을 꿈꾸는 천하일색 제주기생 애랑과 사별한 아내를 향한 순정과 지조를 지키려는 배비장,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유쾌 발랄한 사랑 얘기가 47년 만에 부활했다.


    “부담은 전혀 없어요”

    이 작품이 화제가 된 건 1966년 초연 당시 가요계 전설 ‘패티김’이 1대 애랑 역을 맡아 4일간 7회 공연 만에 1만 6천명의 관객을 동원했다는 것. 47년 전 뮤지컬의 불모지였던 한국 공연계에는 일대 파란으로 받아들일만한 작품이었단 얘기다. 그래서 2013년 <살짜기 옵서예>의 캐스팅 자체가 화제였다. 언론의 주목이 부담스럽진 않을까?

    “전혀 없습니다.”

    아니 아니, 자신만만하다는 이야기일까?

    “그래서가 아니라 요즘 공연들은 소재가 굉장히 다양해졌잖아요. 이 작품도 그런 의미로 보면 소재의 다양성 면에서 가치도 있고 고전을 현대식으로 바꿔한다는 것이 즐거워요. 작품에 대한 부담보다는 즐거운 마음이 앞서는 거죠. 고전이라 너무 올드한 작품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까 세월이 많이 지나서도 리바이벌되는 이유가 있더라고요. 4, 50대 분들이 뮤지컬을 자주 보시진 않잖아요. 대학로로 소극장 뮤지컬을 보려고 잘 찾지는 않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그분들을 위한 보여줄 거리를 만들었다는 게 참 좋아요. 저도 처음에 이 작품을 하겠다고 결정하게 된 계기도 거기에 있거든요.”




    마당극에서 홀로그램까지

    고등학교 시절 서울예술단의 <배비장전>을 보고 자란 최재웅이 맡은 배비장, 47년이라는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배경이 제주라 인물들이 제주도 사투리를 많이 쓰는데요. 이 부분은 좀 알아듣기 쉽게 바꿨고요. 말투는 현대식에 가까워요. 너무 사극 톤으로만 하진 않았어요. 그래서 보는데 거리낌은 없을 거예요.”

    기자는 <살짜기 옵서예>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니 1980년대 들어 명절마다 TV에서 볼 수 있었던 마당극이 떠올랐다.

    “그런 느낌이 들 수도 있어요. 방자가 유쾌하게 극을 이끄는 역을 맡고 있는데 관객과 소통하고 웃음을 이끄는 면에서 마당극 느낌이 날 수도 있어요.”

    마당극과 또 다른 점이라면 국악기가 아닌 피아노와 바이올린, 전자기타, 드럼 등으로 무장한 14명의 오케스트라가 전통 음악을 들려준다는 것. 그 외에도 영화 <스파이더맨3>의 아트디렉터이자 뮤지컬 <쓰릴 미>, <파리의 연인>등에서 세계적인 무대 디자인을 선보인 김희수 무대디자이너와 다수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 영상 디자인으로 참여한 애론마이클라인(Aaron Michael Rhyne)이 홀로그램과 3D 맵핑이라는 최첨단 기술을 <살짜기 옵서예>뮤지컬 무대에 적용한다. 그래서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 경관을 더 입체적이고 화려하게 선보인단다. 안무가 출신 연출가 구스타보 자작(Gustavo Zajac)까지 공동연출로 나서 대한민국 최초의 뮤지컬을 화려하게 부활시킬 예정.




    홍광호와는 15년지기

    더블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은 홍광호와는 막역한 사이라는데.

    “제가 고등학교 선배예요. 어려서부터 알아왔는데 광호를 안지 15년이 넘었어요. 사적으로도 패밀리 중 하나니까요. 그래서 더 즐겁게 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이번 작품에 관해 진지한 얘기도 오갔을까?

    “전혀 없습니다. 그냥 즐겁게 하고 있어요. 서로 더 웃기려고 하고요. 노래는 광호가 워낙 잘 하니까 제가 오히려 보면서 따라 배우는 부분이 있고요. 저는 사극을 했던 경험이 있으니까 대사 말투 같은 것들은 제가 자신 있는 부분이라 공유를 해요. 서로 놀면서 그렇게 열심히 해요. 진지하게 열심히 하기보다 농담을 하면서 하죠.”

    그래서 연습실 분위기는 더 화기애애하다. 숫기가 좀 없지만 좀 친해지면 장난 안 치고는 못 배기는 최재웅. 제작진과 배우들이 모두 좋아 이번 작품을 시작하는 데 망설임도 없었다.

    “선영 누나, 광호는 워낙 친해서 죽이 잘 맞아요. 항상 밥 먹고 선영 누나랑 광호랑 커피 한 잔 하면서 수다 떨거든요. 설거지하고 수다 떠는 주부들처럼. 송영창 선생님과 다른 선배님들, 김민정 연출과도 늘 하고 싶었어요. 또 하나는 누구에게나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의미도 있었기 때문이죠. 그동안 좀 한정된 작품들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요.”


    드라마를 해서 인기가 올라갔다?

    “전혀 아니에요. 길 가다가도 알아보는 사람 없던데요. 그냥 다행스럽게도 영화도 사극으로 데뷔하고 드라마도 사극이어서 그런지 시행착오는 없었던 것 같아요. 사극 말투가 굉장히 정교하더라고요. 기본적인 발음이나 장단음을 구분해줘야 했는데 그랬던 게 지금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카메라에 적합한 외모를 갖고 있는 최재웅은 이미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 출연과 얼마 전 막을 내린 드라마 대풍수에서 동륜 역을 맡아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시원스런 서구적인 마스크와 달리 모두 사극. 그리고 이번 뮤지컬도 사극. 다음 작품도 사극이라면?

    “감사합니다.”

    한 번 하게 된 작품은 죽을 때까지 꼬리표처럼 따라 다니는 게 배우의 이력. 하지만 최재웅은 자신에게 들어온 작품이라면 우선 이토록 긍정적이다.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사람이 워낙 많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저도 어렸을 때 오디션을 보러 가면 몇 백 명이 오더라고요. 서류에 1차부터 3차까지 오디션을 보는데 줄 쫙 서있는 광경을 봤기 때문에 감히 나한테 어떤 작품이 들어온다면 세상에 그렇게 감사할 수 없어요. 그래서 일단 작품이 들어오면 우호적으로 보게 되는 거죠. 그리고 기존에 했던 역할보다 새로운 역을 좋아하는 편이라 그런 걸 좀 보죠. 앵콜 작품은 가급적이면 안 하려고 하고 새로운 작품들을 좀 선호해요.”

    이번 작품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하나 더, 그간 게이나 트랜스젠더, 살인마 등의 역을 맡아 집안 식구들에게 딱히 보러오라 하기 뭐했던 꺼림칙함도 이번 작품으로 싹 씻을 수 있단 사실.

    숫기는 없지만, 장난은 무척 좋아하고, 인생에 굴곡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워낙 초 긍정적인 성격 탓에 힘들게 살아온 기억은 별로 없다는 최재웅. 그만의 꾸밈없는 캐릭터는 2013 <살짜기 옵서예>의 새로운 배비장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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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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